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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홍 : 고전부흥의 의의—새로운 창조와 건설을 위하여

stellio 2022. 12. 2. 02:00

고전부흥의 의의—새로운 창조와 건설을 위하여

박종홍

 

1.

   우리네가 역사에 있어서 특히 전환을 말한다면 그것은 순조로운 유기적 발전으로서의 변천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과거의 전통적 타성에 끌리어 윤체輪替되는 안일한 관습적 반복을 의미함도 아닐 것이다. 문화의 고정화로부터 필연적으로 주출做出되는 자기소외라는 모순된 현상이 종전의 구각舊殼을 보수할 수 없게 된다는 곳에 비약적인 비연속적 전환을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여기에 갈망되는 것은 새로운 지평의 전개, 새로운 원리의 파악, 그러나 기성적 규준으로 헤아릴 수 있는 과거의 자연생장적인 확대나 연장이 아닌지라 앞으로 닥쳐드는 것은 인습적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불안, 안정된 지반의 상실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공허감뿐이요, 미래에 대한 초조로 마음을 태우는 정열과 성실이 오히려 아찔한 혼란에 사로잡히기 쉬운 시대다. 이러한 때에 고전이 문제됨은 무슨 까닭인가? 일견 모순된 기현상이 아닐까. 더욱 외래의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내면적으로 소화도 되기 전에 성급한 형식적 추종에만 급급하였던 이 땅의 특수 사정은 다시금 세계적인 이 전환에 임하여 일층 착잡한 정황 속에서 헤매게 된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과조차 예측키 힘든 긴장으로부터 차라리 일탈하여 일시적 안온이나마 탐하기 위하여서 회고적 자위가 고전의 부흥이라는 미명을 가장하고 나타난 것도 아님직하다. 골동적 취미로서의 수집과 정리가 가지고 있는 소극적 의의조차 무시할 것은 아니나, 그 한만閑漫한 퇴영적 태도가 우리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긴박한 진지성과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무기력한 전락顚落을 창연蒼然한 옛빛으로 부질없이 호도하여 홀로 초연한 듯이 꾸미려는 것도 아니요, 마치 전형적인 동경의 이상향을 고대에서 다시금 찾아보려고 하는 호고벽好古僻을 이름도 아니다.

 

2.

   고전이 인습적 전통이나 골동품과 달라 높은 평가를 받는 소이는 언제나 그 생생한 근원성에 있다. 발랄한[각주:1] 생의 근저에서 용솟음치는 박력이 그 자신 영원히 새롭기 때문이다. 본연적인 인간성이 새로운 <티푸스>에 있어서 건실한 발로를 보이기 때문이다. 형식적 계박繫縛을 벗어나 창조와 새로운 건설을 위하여 씩씩하게 싸운 그들의 오리지날한 의기가 오히려 현대인의 심정에 공명되는 바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옛것이면서도 가장 새로울 수 있고, 먼 것이면서도 가장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 고전이 가진 바 특성이 아닐 수 없는 것이요, 이와 같이 하여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최고봉으로부터 최고봉으로 비약적 단절을 넘어 새로운 연결을 짓게 되는 것이 곧 고전 부흥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로 돌아가려고 공연히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정열이 과거로 하여금 이 순간에 있어서 소생케 되는 것이요, 과거의 의미가 미래에 대한 결단을 통하여 각각으로 새로운 힘으로 새로운 운명을 걸머지고 긴장된 현재의 없지 못할 일계기로서 등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비로소 참된 과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 과거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은 마치 무조건하고 두들기기만 하면 황금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마술 방망이도 아니요, 용지불갈用之不竭하는 영천靈泉의 근원지도 아니다. 고전이 고전으로서 나타날 때에는 벌써 그 시대 정신이 객관화된 것이요, 로고스화라는 고정된 형식을 가지고 나온 것임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그 시대와의 관계에 있어서 전체적 통찰을 소홀히 하고 한갓 지엽적 자구에 구애되어 유사한 외양만 들추어 오로지 자기 주장의 강조와 권위를 붙이기 위하여서의 한낱 수단으로 오용한다면 그야말로 고전에 대한 헛된 신뢰라기 보다도 차라리 일종의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을 단지 로고스화된 차원에서 고핵考覈 천착함에 그친다면 그것은 훈고학자나 문헌학자의 학구적 취미에 일임하여도 무방한 일이다. 일층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다시 살려내어 지양 전승하는 곳에 고전 부흥의 본의가 있을 것이다.

 

   인습적 전통을 일거에 단절함은 무서운 일이다. 목전의 안일을 택하는 약자의 비겁을 그 누구가 감히 비웃을 용기를 가졌으랴마는 이러한 태도는 다시금 전통의 압력에 휩쓸리어 전통과 더불어 몰락을 같이하게 될 뿐이요, 미래에 대한 정열과 성실을 끝끝내 잃지 않는 굳센 힘만이 전통과 싸워 가며 절대의 부정을 매개로 하여 도리어 참된 유산의 생명을 살리며 전승을 확보하는 것이다.

 

   참말로 시대의 첨단에서 용감히 싸우는 젊은 힘만이 진정한 고전의 부흥도 가능케 한다는 모순의 진리가 비로소 역사 전환의 추진력인 것을 또한 생각 아니할 수 없다.

(1938.6.1.)

 

  1. 원문에는 潑이라고 쓰여 있으나 潑剌의 오기인 듯하여 바로잡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