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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은 보수를 사랑하는가

stellio 2023. 9. 28. 13:00

左 스트라우스, 右 헌팅턴

에릭 헨드릭스-킴

왜 중국은 보수를 사랑하는가[각주:1]

 

번역자의 앞글

   미국 헤게모니의 일극적 세계는 끝나려 하고 있다. 미국이 탈퇴한 CPTPP는 중국이 코를 묻히고 있고, IPEF는 환경과 노동의 거창한 주장을 버리지 못하는 가식을 패대기치지 못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이야기에 무슨 반론할 거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말솜씨 좋은 전문가들은 동아시아질서의 미래가 미국의 일극적 주도권과 동아시아의 다극적 지역통합노력이 타협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결정되리라고 온당하게도 전망하고 있다.

 

    역사의 종언 여부는 영구미제이다. 역사의 소멸은 역사의 시원을 이끌어내서, 늘 새롭게 제기되는 논쟁에서 낡은 논쟁의 흔적은 역사 위에 남겨지지 않는다. 그러니, 절대정신의 부패는 해체가 아니라 그저 변태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의 토양은 대체로 비옥한 것이다. 동양과 서양,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은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되었고 낡은 아이온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과거와 더불어 새로워서,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의 끄트머리에서, 중국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역사철학이 아니라 보수의 힘, 반동의 힘에 의탁해야 한다. 일단, 역사철학이라는 독극물이 주입되면 국가의 국성國性은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보편주의적 · 계몽주의적 원칙이 모든 역사적 사고에 이론적으로 강제되고 모든 역사적 고양이들이 동일한 무늬를 띠게 되는 서구인의 정신승리법은 동양인의 자존심에 끝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제,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문명” “민족” “문화”의 신기루는 서구와 맞서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또 선전하는 과정이면서 (이런 작업의 대표격으로는 토마스 만의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을 들 수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헐거워진 서구가 “보수”에 대한 저작권을 잃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보수”는 이국선망적인 요소가 아니라 호국 사상으로서, 이방의 신이 아닌 중화 민족주의로, 또 팍스 시니카의 표상으로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보수 사상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자기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중국적 보편성에 관한 사상적 주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외래의 가시덤불을 중국의 틀 속에 정착시키는 기제와 기준을 만드는 역할은 “보수”라는 교두보에 의해서 감당되고 있다. 구미에서는 구악의 찌꺼기로 치부되는 스트라우스와 헌팅턴이 중국에서 지성적 후광을 얻는 과정은 그들이 중국의 사상적 기조인 유교와 제휴를 맺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무신론적 입장에는 체제긍정적인 보수주의가 깃들 수 있는 여백이 넉넉히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행된 학술學術은 보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중국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서 그 본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되게 해주었다. 신보수주의 유학자 장칭과 자오팅양의 저작은 민족을 허투루 보고 인간을 문명의 점착성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보편주의의 정신적 침식에서 벗어나, 중국이 다시 자기자신을 확실히 소유하기에 이른 자유가 된 정신의 현현이자 새로운 보편성을 향해 전진하는 중국혼이다. 헌팅턴과 스트라우스의 저작은 신보수주의 유학이 입지立地하고 있는 위기의 기념비이다. 거기서 전근대적 토속주의는 근대적 민족주의로 중국사상의 핵심성격은 전환되고 있는데, 이는 서구 “보수주의”에 대한 원근법의 획정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 사이의 긴장을 참고 견딘다. 그들은 전통적인 것의 진정성을 위해서 전통적인 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긴장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신보수주의는 서구의 보수주의들 보다도 훨씬 무거운 것이다. 신보수주의는 그에게 고유한 부정성의 모멘트를 본질적으로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보수주의라는 마계魔界는 이토록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고뇌의 세계를 부여한다. 그 원환적 시종귀일에서 한국에서 보수라는 말은 여전히 쑥스러워서 나는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

 

    자오팅양의 천하주의에 나오는 세계주의의 전제는 민족주의이다. 이 글의 저자 헨드릭스-킴은 자오팅양의 천하주의를 “유토피아적”이라고 비난했던 거자오광의 논지를 과연 복창하고 있다. 두긴을 연상시키는 중국공산당의 인종주의적 논법과, 자생적 운명의 뿌리를 함께 하고 한통속이 되자고 하는 “아시아운명공동체” 따위의 어법에는 동아시아를 중화성의 확대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불행의 냄새가 느껴진다. 전통의 힘으로 현실을 개혁해 나갈 수 없었던 한국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두 극단 가운데서 중용쯤을 취하자고 머리를 굴리는 창작과비평 류의 동아시아담론은 이 혼곤한 교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전통에서 근대까지의 거리는 아득하고, 그 거리를 건너가는 방편은 다만 “동아시아”니 “지역주의”니 하는 찬란한 허상 이외에는 없지 싶어서, 조공국의 박식한 책상물림들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바퀴를 영원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모던은, 따라서 근대화는, 단일하거나 일괴암적이지 않다는 경우바른 말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불과 몇 십년 전이었다. S. N. 아이젠슈타트가 이제는 고전적인 개념이 된 “다중적 근대성”을 통해서 표현했던 것은 합리화와 세속화라는 형식을 띤, 기독교와 그것이 사회 및 정치에 대해 가지는 관계가 점진적으로 근대화되었다는 중서부 유럽적인 서사가 그 자체만으로로서도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적용되기에는 턱없다는 단도직입이었다. 근대성에 대한 비판도 이 “다중근대성”에 포함되는 바, 세계화나 국경의 넘나듦 뿐 아니라 당당한 한국의 얼굴을 찾아야 겠다는 민족주의화의 과정 또한 근대화의 형식으로 편입되게 된다. “근대의 초극”이나 “근대의 폐기”는 이 근대화의 과장어법에 편승하는 정치구호였고, 이 정치구호를 긍정하거나 거둬내 버리지 못하는 심적 바탕 위에서 한국에서는 김덕영의 “한국적 사회학”을 포함해서 무수한 좌파적-보수적 인식론과 동아시아 내부의 관계망과 비교연구에 천착하는 (정치적 기원을 가진 서구 대 중국이라는 이분법을 다소간 해체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전문적 헛소리의 물결이 형성되고 있다.

 

    헨드릭스-킴은 1963년을 기점으로 잡고 있지만, 문화의 보편사를 쓰려고 했던 베버와 슈팽글러의 연구방법론은 70년대부터 문화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이라고 비난 받아서 원시적인 비교 만능주의와 동일시되었다. 그 후, 문화연구와 사회과학에서의 타입Type의 사용은 백안시되었고, 비교연구는 아마추어리즘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대항해서, 비교연구를 포기하는 대가는 역사주의로의 퇴행일 뿐이라는 비판이 회자되었던 것이다.

 

    전통을 밑돌로 괴서 근대를 향해 전환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전통이 정신의 누름돌이 되지 못했던 나의 조국에서, 문화주의와 (도래하고 있는) 보수주의의 연관을 끊어내는 것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하나같이, 아시아의 민족주의자들은 초기의 감정적인 도전과 자코뱅적 멘탈리티를 극복하고 나면 완숙기에는 반드시 아시아적 삶의 내용과 정서, 민족적 전통의 우위를 입증하는 역사적 문명의 재현을 극구 애면글면해 왔다 (백영서 등은 동아시아론의 비조를 테러리스트 안중근에게서 찾고 있다). 이것이 베버가 말하는 최소한의 책임감과 균형감을 갖춘 새로운 정신사의 개발로 이어질지, 또는 문화민족주의가 새로운 보수주의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나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한국에서, 보수주의는 “이중과제론”이나 “핵심현장”과 같은 부류의, 여러 부면의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보겠다는 오해와 헛디딤의 위험이 큰 기염이 아니라,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희망심과의 거대한 반목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문화의 보편을 조여들어가서 그 실증정신 속에서 명멸하는 깊고 조용한 힘이 부재한다면, 이른바 비교연구는 기독교의 성찬식과 오래된 부족 종교의 식인풍습을 일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딜레탕티즘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헨드릭스-킴의 마지막 문단은 중국인이라는 무신론자, 현실적 종말론자들이 “보수”라는 이름을 참용僭用하는 것이 매우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것인가, 아니면 중화 민족주의라는 커다란 주류가 있었고 그 주변에 서구 보수라는 사상적 흐름이 있었는데 그 둘의 원초적인 동질성이 발견되자 자연스럽게 양자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중국인의 세속적인 정향에는 보수주의가 보유補遺할 수 있는 사상적 여백이 존재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아직도 이 “보수”라는 이름이 전통적이고 총체적인 기획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돼야 하는가, 라는 막막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보수에 의탁하는 것이 다만 서구 보수주의 정신의 변질이고 의태라고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인지, 게다가 중국인들이 벌이는 저 기이한 연극은 스트라우스나 헌팅턴이라고 하는, 보수주의 가운데서 중화성의 추구로 합류될 수 있는 부분만을 추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리버럴 국제주의라는 가태假態를 집어치울 수 있었다).

 

    저자는 이처럼 서구의 “보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유교의 비논리적 복합체가 부추기고 뒤흔드는 저편에의 열망을 자신의 이름 속으로 받아들여 가면서 중국의 “신보수주의”로 넓어져 가는 과정에서 자의성의 모멘트로 보이는 것을 비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로써 저자는 문화적으로 총체적 접근과 개념으로서의 보수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를 재활성화하는 길을 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비타협적인 문화와 종교를 가장 비교연구에 취약한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문화적으로 총체적인 접근(저자가 “보수”와 동일시하는 것)의 약점이다. 이 재맥락화의 움직임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용서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하되, “보수”라는 말은 총체적인 활동을 인도하는 이념을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8세기부터 지속된 혁명의 카타스트로프—계급없는 사회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영성까지를 포함해—를 드러내는 데 여전히 도움을 주는 이름이기는 한 것이다.

 

본문

    서구 보수들에게 중화인민공화국은 지랄같은 적수이다. 시민사회, 그리스도교,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수주의의 애착을 깡그리 부정하는 레닌주의 정당에 의해서 지배되는 억압적인 테크노 디스토피아가 거기 여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본토의 지적 주류의 입장에서는 서구 보수주의를 깎아내리는 것은 오로지 타당하리라. 중국은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공산주의이고, 신유학이니, 마르크스주의와 등소평의 개혁주의를 위시한 그 정치사상의 대표적 전통들은 서구 보수주의적 전망과 도무지 겹치어지지 않는 것이다. 서구 보수주의와 중국의 지적 주류 사이에 도대체 어떠한 친연성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워라, 중국에는 서구 보수주의 작가들에 대한 독실한 사랑이 있다. 가령 새뮤얼 헌팅턴이나 레오 스트라우스의 저작은 중국 학자들과 지식인들에 의해서 숙독되고 사랑받는다. 그리고 미국 정치에 대한 중국 쪽의 해석들은 때때로 미국 우익들의 해석들과 겹치어진다. 이러한 친연성은 분명히 복잡다단한 원인들을 가질 것인데, 두드러지는 한 가지 공유된 믿음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회는 통합적이고 총체론적holistic 문화에 의해서 비끄러매인다는 것이다. 무릇, 건강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북미의 대학교에서 횡행하는 진보좌파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중국 사상가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북아메리카의 정체성정치를 지칭하는 중국어—白左(“하얀 좌파”)—는 극구 경멸적이다. “백인 좌빨들이 어제오늘 꽂혀 있는 것들” 정도를 의미한다고 할까. 중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파당의 학자인 쉬지린 같은 지성사가도 북아메리카의 바이주오白左를 지나치고 분열적인 것이라고 감정한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에 관한 한 토론회에서 쉬지린은 “그 운동이 운용하는 강압적인 전략”은 “역사를 삭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더 깊은 인종적 민족적 분쟁”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타박했다.

 

    나이 먹은 자들은 바이주오에서 마오의 문화대반란(1966-76)을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그렇다. 문화적 평등이라는 미명 하에 “계급의 적들”을 찍어누르던 그 폭거에 시달린 기억으로 인해서, 이 사상가들은 급진적 초관념론에 가슴이 짓눌리게 된다. 비판가들과 중도세력들이 도중에 훼방 놓지만 않는다면 역사의 진보는 평등의 유토피아를 몰고 오리라는 일종의 관념론—이런 사고유형이 기지개를 켤 때마다 이 장년들은 눈앞이 아찔하고 그 뒤를 따라서 편협성, 강압성, 그리고 더 얼빠진 것이 이윽고 닥쳐들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쯧.

 

    이 지긋지긋함은 사회 · 정치 이론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된다. 오늘 서구의 진보좌파들로부터 배척되는 서구의 사상가들이야말로 중국에서 가장 자지러지는 관심을 받고 있다. 몇 년쯤 전 베이징 대학에서 근무할 때, 나는 새뮤엘 헌팅턴이 자주 인용될 뿐 아니라 꽤 진지하게 섭렵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기이한 일이지만 헌팅턴은 문화적 보수주의자인데도 무수한 중국 지식인들에게 각광받는다. 중국 리버럴들에게조차 말이다.” 몬트리올 대학 동아시아 학과의 데이비드 오운비의 관찰이다. 그러나 명백한 요인들이 중국에서의 헌팅턴의 인기를 부추김으로, “기이한 일이지만”은 적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헌팅턴은 서구의 보편주의적 자기이해를 거부했고, 아시아의 자신감의 상승을 예견했으며, 자유민주주의로부터 근대화를 분리시켜 냈다. 그의 『변동하는 사회들 속에서의 정치질서』 (1968)는 근대화에 관해서라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질서 및 국가적 역량이야말로 더 중대한 독립변수라고 강론하였다. 과연, 냉전 이후, 자유주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널리 과시되었던 가설—근대화는 서구적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전제로 해서 성립한다는 가설—을 몸소 반증해냈다고 현대중국은 기세가 등등해 있다. 중국 본토의 저명한 정치이론가이자 대중지식인인 지앙시공은 저 하버드 정치학자의 호소력의 핵심적 이유를 간추린 바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통치야말로 지고한 정치적 이상을 대표한다는 도그마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믿음을 틀어쥔 서구 정치이론을 헌팅턴은 비판했던 것입니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1996)은 또 하나의 접점이 된다.[각주:2] 불가피한 충돌을 예언한 그 비관론에 처음에 콧방귀를 뀌던 중국 지식인들도 문명 · 문화들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창달한 그 저술의 지론은 틀림없는 것이라고 마침내 무릎을 치게 되었다. 헌팅턴의 강한 “문화주의적” 관점은 종교와 문화적 가치를 상위의 반열에 세웠고, 중국의 공식적 자기이해를 진작시켰다. 중공의 프로파간다는 지칠 줄 모르고 문화놀음을 하면서, 제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서구식의 자유민주주의로는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일관했다. 각 문화들은 서로의 정치체제를 존중해야 하고, 이질성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어야 할 뿐이라고 헌팅턴은 귀띔했던 것이다. “차이를 존중한 문명 간의 대화”에 대한 시 주석의 호소는 이런 사로思路를 답습하는 것이어서, 시진핑은 “기를 쓰고 헌팅턴의 기대와 걱정들에 응답하는” 것처럼 비치기까지 한다고 쓰촨 대학의 문학교수 휘민진은 적었던 것이다.

 

*

    레오 스트라우스에게도, 미국 학계에서의 쇳소리와 중국에서의 관심이라는 대조는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195, 60년대에 시카고에서 가르쳤던 스트라우스는 [미국에서는] 자리잡지 못한 보수 지식인들의 회동에서나 간간히 거명되는 편이다. 대학교의 철학과나 정치학과에서 그의 교설은 칙칙한 뒤안길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다. 중국은 영 사정이 다르다. 그곳에서, 그는 매튜 딘의 표현대로 “사로 잡힌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스트라우스의 저작들의 중국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은 너무도 열광적이고 부지런한 나머지 지금 “영어보다 중국어로 더 많은 스트라우스의 저작들이 시판되고 있다.”

 

    중국 스트라우스주의의 두 좌장은 앨런 블룸에게서 사사한 류샤오펑과 간양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편집한 총서 『서구 학문의 원천들』의 구성권 서문에는 스트라우스와 그 사도들의 심금을 익히 울릴만한 경고들이 토해져 있다: “서구에 대한 건전한 독해를 포용하는 중국의 학자들은 서구사상의 체계에 대해 까탈스럽게 굴기를 불사하고, 서구의 대학캠퍼스를 점철하는 잡다한 혹세무민하는 관견管見에 직면해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왜 중국학자들은 스트라우스의 저작으로 말려들어갔을까? 2010년 마크 릴라는 중국에서 지낸 뒤 이 문제에 관해서 글을 적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삶의 리버럴한 관념들에 대한 역연한 불만족이 스트라우스를 매력 있는 것으로 만들었는데, 스트라우스 역시 현대 자유주의가 충분한 것인가에 대해 의심했다는 것이다. 릴라는 또한 “공공선에 봉사하기 위해서 양성된 엘리트 계층” 이라는 스트라우스의 “생각”이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맞아떨어졌다고 보았다. 참, 스트라우스가 서구 정치철학에 관해서 큰 필치의 개관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중국의 독자들의 혼을 앗아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나는 한가지 요인을 얹으려고 한다. 스트라우스의 사회관은 “문화적 총체주의”라고 지칭할 만한 것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에 부합한다. 그리스 전통에 의거해서, 스트라우스는 저마다 독특한 기조基調를 가진 정치적 · 문화적 전체들로서 사회들을 취급하였다. 그 기조는 폴리테이아, 또는 이 희랍어에 대한 그의 번역을 따르면 레짐regime이라고 지칭된다. 그가 『정치철학은 무엇인가?』(1957)에서 적었던 것처럼 “레짐이란 오늘날 우리가 대체로 파편화된 형태로 보기 버릇하는 저 전체를 의미한다. 레짐은 사회에서 삶의 형식과 그 삶의 격식과 그 도덕적 취향과 사회의 형식과 취향의 형식과 통치의 형식과 법의 정신 [모두]를 폭넓게 의미하고 있다.”

 

    중국 사상가들도 기이하리만큼 레짐의 분석틀로서 사유한다. 1991년 왕후닝은 여행기 『미국과 미국이 마주서다美国反对美国』에서 하나의 통합된 문화적 · 정치적 레짐으로서 미국 사회를 조감했다. 그때는 국제정치학 교수였고 지금은 중국의 고위 관료가 된 그는 미국적 삶의 기조가 되는 정신을 천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볼 때,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에 비해 역력히 더 소루한 사회적 상상력을 지녔다. 자아에 대한 통합적 감각이 결핍되어서, 미국인들은 제 나라의 병폐의 얽히고설킨 성격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개인주의를 숭앙하고, 그 믿음은 미국 레짐의 반석인 것인데, 이 정신상태야말로 사회적 피폐화, 더 심하게는 파탄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던 것이다.

 

    대체, 보수 사상가들에 대한 중국의 이끌림에는 어떤 패턴이 설정되어 있다. 헌팅턴과 스트라우스는 선명하게 민족적 · 지역적인 “삶의 형식들”, 곧 우리가 문화라고 약칭하는 것에 휘어잡힌 것으로서 정치를 사유한다. 중국 지식인들의 세계관도 이와 같다. 사회적 삶과 정치적 현실은 문화적 전체들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문화적 전체들을 형성한다). “문화는 한바탕 전체로서 현현하는 것이지, 다른 것들과 고립된 부실한 것일 수는 없다”고 휘민진은 『텔로스』 지에서 썼다. 문화적 가치들이 사회를 붙들어 맨다. 쉬지린의 말처럼, “한 나라의 정의正義를 둘러싼 내적 질서는 실질적 내용을 지닌 절박한 공통된 가치들을 요구한다.”  그는 이 사실을 도외시했다는 사실을 들어 미국 자유주의의 조류를 비판했다. 법적 권리와 절차적 규범들에 의존하는 저러한 자유주의는 시민들에게는 너무도 적게 요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적으로는 과도한 규범적 수렴현상을 기대한다고 쉬지린은 지청구했다. 현대 자유주의는 “서구식의 인권 기준들”이나 떠들어대고, 그것들이 특수하게 서구적일 뿐 아니라 “많은 기축 문명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진보좌파의 이데올로기는 정말이지 문화적 전체들을 낮잡아본다. 그것은 세계를 보편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인 시각으로 다루는 한편으로, 민족적 사회들은 사분오열된 개인들의 집합 쯤으로 도리어 끌어내린다. 정체성 정치로 고양되어서, 이 판본의 자유주의는 개인들을 교차하는 정체성 범주의 구성원으로 산산조각 낸다. 그 범주들은 실제의 공동체나 문화들이 아니라, 다만, “아시안 아메리칸”이니 “LGBTQIA+”니 하는 인구통계학적 창안물에 지나지 않는다. “LGBTQIA+ 커뮤니티” 식으로 “커뮤니티”라는 어휘가 그 추상물들에 덧붙기는 하지만, 어떤 정체성정치의 범주들도 공유된 문화적 삶을 지닌 구체적 공동체들은 아니어서 헛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정체성정치의 유사연대감은 상속된 문화들의 정통성을 이지러뜨림으로써 결국 개인들을 가차없이 원자화하게 된다. 이 같은 결과는 필연적인 바 있다. 진보좌파들은 사회적 세계에 대한 그들의 서사에서 더 거대한 문화적 집합체들을 배제함으로써 그 영향을 타기하려고 한다. 하여, 그들은 서구의 인문학 및 사회과학 학과들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함으로써 저들의 서사들을 살포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구의 보수들은 이러한 기획에 분통을 터뜨리고, 중국 지식인들은 그들에게 찬동한다.

 

*

    아무려면 서구 지식계가 문화적 총체론에 주구장창 눈을 흘겼던 것은 아니다. 서구 사회학의 선구자들은 사회를 유기적인 전체나, 갈등과 자원 배분의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각축장로서 파악한 바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이나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1864-1920)가 현대 사회가 직업 및 가치영역의 수준에서 어떻게 더 내적으로 분화했는가를 부각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뒤르켐에 따르면, 어쩜, 현대 사회들은 공유된 사회적 상상력에 의해서 철석같이 응집되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베버가 뒤르켐보다는 문화 내부적인 가치 투쟁들에 대해서 더 주의했다고 해도, 각종 세계종교의 사회경제적 유산에 대한 베버의 연구는 실로 여러 문명들에 대한 비교 연구였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와 중국의 문명 질서는 독특한 가치와 전통들의 다이나믹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고유한 사회적 삶의 형식을 산출하는 것이었다.

 

    서구 학계 내에서 베버 식의 비교문명론이 무리없이 존중받을 만했던 마지막은 1963년이었다. 슈무엘 아이젠슈타트가 『제국의 정치체제』에서 유럽과 일본, 중국과 이슬람이 어째서 모더니티의 다른 판본들을 생산해냈는가를 설명했던 해였다. 그 후, 파편화하는 시각들이 발호했다. 모름지기 문화들은 “경화”되거나 “본질화”되어서는 안 되고, 징고이즘을 부추기고 비서구인들에 대한 억압을 인가한다고 말해지는 “문명”이나 “서구세계”와 같은 단어들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서구학계의 에티켓이었다. 거대한 문화단위들은 썩 내키지 않았다. 혹, 극미한 그룹화에 “문화적”이라는 형용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무방해서, 서브컬쳐는 용납되었다. 그러나 “미국 문화”와 같은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미심쩍을 정도로 다양성에 충분히 맞춤하지 않고 심지어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사회를 버티어주는 것에 대한 성찰은 곧 중국 학자들이 뿌리박힌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총체론으로서, 민족주의적 정치기획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말해진다. 이는 선생과 학생들 모두가 질세라 덮어놓고 혐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구의 학자들이 제도적 형식들과 세계화에 대한 연구에 덧붙여서 서브컬쳐와 미시적 정체성 그룹들을 강조하기에 부심한 것은 그 [민족주의적] 경향성에 대한 저항이었다. 민족적 끈끈함과 문명의 블록이라는 질식할 것 같은 패치워크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투였다.

 

    그 당연한 귀결로서, 서구 학자들은 공유된 전통에 의거한 문화적 비교연구를 홀대하게 되었고, 헌팅턴이 지적하듯이 인류의 문화적 삶이 다분히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블록들 내부에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념되지 않았다. 물론, 문화들은 칼로 벤 듯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어슴푸레한 경계 지역들, 디아스포라들, 하위집단들, 지역적 변이들, 그리고 독특한 정체성으로 조합된 에트랑제들은 늘 출몰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측면들만 부여잡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문화적 삶이 여전히 얼마나 블록들에 의해서 틀어쥐여 있는가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논문 “이른바 민족학에 대해서”에서 플라먼 아칼리스키 등은 세계가치조사에서 민족적 단위의 설명력을 종교 또는 인종과 같은 대안적 분류단위의 설명력과 비교했다. “민족nations”이야말로 한 개인의 문화적 가치의 “최적의” 설명변수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많은 학자들의 직관과는 대척되지만, 인종적 · 언어적 · 종교적 그룹과 같은 여타의 사회 종합구성체들이나 이런저런 사회인구학적 범주들은, 민족에 의해서 이미 설명되고 있는 분산explained variance에 별 보태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민족이 문화의 철두철미 실재하는 단위일 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여타의 변별되는 요소들보다 유의미한 것이라는, 중국 학자들과 많은 서구 보수들의 지배적 견해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 앞선 연구에서, 사회학자 로날드 잉글하트와 크리스찬 웰츨은 잘 알려진 세계문화지도를 제시한 바 있다 (그래프를 참조하라). 세계가치조사와 유럽가치조사의 응답자들을 민족에 따라서 나누어 볼 경우, 보다 큰 세계-문화적인 지역과 문명들의 클러스터를 이룬다는 것을 이 두 조사들은 보여주고 있다. 잉글하트와 웰츨은 전통적 가치를 세속적 가치와 비교하고 생존 가치를 자기표현적 가치와 대조했다. Y축 (전통적-세속적)은 종교, 가족의 가치, 정통적 권위에 응답자들이 부여하는 중요도를 표시하고 있고, X 축 (생존-표현)은 경제적, 물리적 안정성에서 주관적인 웰빙과 삶의 질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만일 민족적 평균치들을 산점도scatter plot에 배열할 경우, 세계-지역적 패턴들이 드러나게 된다. 가령, 강고한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가진 유럽 국가들이 세속주의와 자기표현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반면에, 영어권 국가들은 그들 못지않게 자기표현적이면서도 더 극명하게 전통적이었던 것이다.

    두 연구의 결론을 본격 종합해보자. 민족적 소속이 분산의 거개를 설명하고 민족들은 보다 큰 단위의 문화적 지역으로 무리 지음으로, 우리의 문화세계는 가히 “사람들은 민족 안에 존재하고, 민족들은 문명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 문화적 박스의 세계를 상상하는 서구 보수와 중국 학자들 모두의 습벽은 아주 억지는 아닌 셈이다. 민족과 문명을 정치적 삶에 있어서 핵심적 실재로 보는 견해는 문화의 박스 바깥에서 사유하려는 진보좌파들의 시도들 보다 십분 타당한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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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는 도덕적 실체를 지닌다. 문화적 각축은 준열하고, 문명들은 한사코 엄존하고 있다. 중국 사상가들과 서구의 보수들은 이처럼 근본적인 명제들에서 의견이 일치된다. 두 그룹들에게, 사회는 공유된 가치들에 의해서 붙들어지는 짙게 문화적인 전체로서 사념되고 있다. 당연히, 이 수렴 현상은 전폭적이지는 않다. 중국 사상가들과 서구의 보수들이 사회 속에서 간파해내고 정치적으로 포용하는 문화적 총체주의들은, 세상에, 그 실체가 상이한 것이다. 민족문화와 문명적 정체성을 부각하는 서구 보수주의가 말하는 총체주의는 중국 정치사상의 총체주의와 같지 않은 것이어서, [중국의 그것은]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이 거부하는 인간의 마음, 사회적 결속, 정치적 권위에 대한 견해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자주, 중국 사상가들은 지도자들과 사회는 도덕적으로 완전해질 있다는 유토피아적 믿음에 붙들려 있다. 현대 중국 철학자들로 하여금 선한 지도력과 도덕교육에의 지속적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이기심과 당파성이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퇴조할 것이라는 호기를 부리게 하는 것도 이 같은 낙관론이다. 내가 중국 철학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믿음에 맞닥뜨렸을 때 나는 이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2017년에 베이징에서 사람들과의 토론이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던 한 고등중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토론들이란 곧 끝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통합시키는 도덕적 진리가 곧 부상해서 사람들이 토론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가 대는 이유였다. 아, 왜 금시에 낡아질 견해차이를 두고 입방아를 찧어야 하는가.

 

    그 성실한 우등생은 중국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토마스 A. 메츠거가 “중국적 유토피아주의”라고 지칭했던 중국 정치사상의 굵직한 지류를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뜬구름』에서 메츠거는 “구체적인 지금-여기가 도덕적으로 완전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전해져야만 한다는 신념”이라고 중국적 유토피아주의를 풀이했다. 이 믿음은 유교적 관념론의 현대적 재해석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전근대의 신유학자들에게는, 인류의 황금기는 주공周公이 천하를 하나의 조화로운 가족으로 불러모았던 치세 (1042-1035 BC)의 머나먼 과거에 자리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인류는 하향세에 접어들었고, 이 점진적 하강의 추세는 부분적인 복벽에 의해서 간헐적으로 중단될 뿐이었다. 역사적 진보에 관한 사회주의적, 현대적 · 서구적 관념들에 영향을 받아서, 캉유웨이 (1858-1927) 같은 근대주의자들이 구원의 국가를 근미래로 옮겨 놓았던 20세기의 초엽에 이 역사관은 물구나무를 섰다. 그의 저명한 『대동서大同書』는 모든 이들이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부면에서 평등한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도모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인간적이고 자기도야적이기에 힘쓰기 때문에 경쟁은 타개될 것이었다.

 

    유교적인 것과 모던한 것의 이 같은 융합은 지난 세기 중엽에 마르크스주의적-레닌주의적 유토피아주의의 수입을 예기하였고 오늘까지도 중국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메츠거는 부연했다. 그리고 북경대학교의 철학자 자오팅양은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서 파당성이 제거되고 외교적 긴장은 낡은 것으로 되며 세계의 문화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되는 글로벌 도덕혁명의 비전을 그려냄으로써 근래에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근작인 『천하』는 정치적 대립을 전세계적 우정의 질서로 대치하자는 그의 호소를 되뇌고 있다: “정치란 경쟁적 대립에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 적대감을 우정으로 착색시키는 예술이 돼야만 한다.”

 

    이 도덕적 유토피아주의는 서구 보수주의의 종지宗旨와 정면충돌한다. 그 신념에 있어서 버크적이든, 하이에크적이든, 신학적이든 간에, 버젓한 보수주의는 인간의 타락이라는 기독교적 관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이기심을 포함한 죄야말로 인간존재의 뿌리깊은 특징이라는 것에 착목하면서 최악의 권력남용에 대비한 안전판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권력의 분립], 법치주의와 열린 토론이 정녕코 불가피한 것은 지도자들은 결코 전폭적으로 신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의견차이는 언제까지나 산재할 것이다. 순결한 지도자들과 시민들조차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와 제한적 관점에 의해서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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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저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본마음에 대한 비관론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볼 때] 질서잡힌 사회란 한바탕 균형잡는 행위에 가깝다. 다른 제도들과 문화적 전통들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인간적 오류가능성을 메워줄 때 질서는 가능하다. 이와 반대로, 중국식의 낙관론에 따르면 집단은 조화 속에서 통합되어 있고 개인들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구성부분들은 그 통합 속에서 더 높은 도덕적 차원으로 더불어 상승하게 된다. 중국에는 “인구소질人口素质”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 단어는 인구의 “이념적, 문화적, 신체적 [소]질들”을 지시한다고 중국 최대의 인터넷 백과인 바이두백과는 정의하고 있다. 그 모든 소질들은 개선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개개인의 도덕성까지를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것들은 문화적 집합체가 향상되고 개선됨과 함께 맞물려서 증진될 수 있고 증진돼야만 하는 것이고, 마침내 완전한 지도자들을 지닌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도덕성이 그 근저에서부터 집단적으로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서, 중국 사상가들은 일종의 문화적 총체론을 상정하였다. 이는 서구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통합주의적인integral 비전보다도 더 집단주의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주류[사상]은 서구 보수주의 보다도 더 “우파적”이라고 말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유사점은 그것으로 끝이다. 중국 정치사상의 막강한 조류로서의 중국 유토피아주의가 서구 쪽에서 가지는 짝짜꿍은 급진적 사회주의, 그리고 완벽하게 조화로운 포용의 다문화 사회의 꿈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중국 유토피아주의는 좌파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질 수도 있다.

 

    중국의 사회적 상상력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회전은 그처럼 복합적이고 또 복합적으로 다채로운 대상을 서구의 좌우 스펙트럼 속으로 바루어 들이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보여준다. 서구 보수주의와 친연성을 지니고 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고는 해도, 중국의 지적 생활은 전적으로 타자적인 세계라고 해야만 한다. 완전한 전세계적 조화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한에서 서구와 중국이 무수히 불화하는 가운데서도 공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관심을 되돌려주고 또 어떤 공감까지도 보태야만 하는 건 아닐는지.

  1. 원문: Why China Loves Conservatives. [본문으로]
  2. [역주] 헌팅턴은 동아시아를 중화문명과 일본문명으로 나누고, 과거 중화문명의 향수자인 한국을 전자에 귀속시켰다. UC 어바인의 교수인 데이비드 팬은 “중국과 서구”를 다룬 『텔로스』199권의 서문에서 중국의 대극으로서의 “서구”에는 일본과 대만이 귀속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흥미롭게도 한국은 제외시키고 있다. 비참하게도 이 두 서구인들에게서, 미국의 “가치동맹”(윤석열) 대한민국은 자신의 부재증명을 얻고 있을 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