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신라는 참 아직도 오리무중이군요
—시인 모윤숙 선생에게
안녕하십니까.
‘혜성’이라는 잡지사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장 써 달라고 하여서 붓을 들기는 하였습니다마는 무얼 썼으면 좋을는지요. 처음 생각엔 아주 용이한 일일 것 같더니만, 막상 종이를 펴 놓고 보니 이것 또한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닙니다그려. 더구나 처음부터 중인 앞에 내놓을 것을 전제로 하는 이러한 따위의 공개서한이란, 참으로 쑥스럽고 무리한 것임을 처음 경험합니다.
대개 편지라는 것은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서로의 심중을 호소하는 것이거나 혹은 무슨 부탁을 하거나 또는 거기 대한 회답을 하는 유일 텐데, 중인환시리에 전하는 안부 말씀이란 한두 마디면 족할 것이며, 지금 당장엔 편지로 여쭐 긴급한 부탁도 없고 보니 무얼 써야 좋을는지요. 들으면 서구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살로메라는 여자 친구에게 늘 장문의 편지로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고 호소한 일도 있다고는 합니다마는, 제弟로 말하면 동양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근자 10여 년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나 간에 긴급한 용무 외엔 심중 호소류의 편지라는 것을 도모지 하지 않고, 심중에 일어나는 대소 사건은 제 심중에서만 썩혀 온 위인이 되고 보니, 이것은 한층 더 어려운 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시심詩心에 관한 것이랄까—그런 것이나 한두 가지 적어 이 공개서신을 삼을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겠습니다. 깊은 양찰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저에겐 지금 조수潮水처럼 간만干滿하는 몇 가지의 병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저작류를 시정에 팔아 호구의 요를 거둬 가는 유의 행동만은 아직도 부득이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그 밖엔 별다른 행동이라 할 것도 없이 책상가에 앉았거나 자리에 누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생각이라 하오면 제 자신에게는 매우 중대한 생각이 몇 가지 계속되고 있기는 합니다.
뭐라 할까, 하나는 저 ‘신라’라는 것인데요. 그것을 요즘은 소학생들도 모두 좋다고 하고 있지만, 제도 벌써 상당히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이 되어서 우리의 현대에 재현해 보고 싶은 지향이고, 또 하나는—이것 넋두리 같은 소리를 늘어놓아 참으로 미안합니다만 그것은 현재도 나를 에워싸고 있는 꽤 오랜 세월을 누적해 온 이 나라 동포들의 소리입니다. 그중에서도 정형화되고 음률화된 놈—일테면 이동백이나 송만갑, 이화중선, 김남수류의 소리들입니다.
그러나 모 선생, 누대 썩어 온 이 나라의 소리가 소리로나마 내 주위에서 나를 울리는 데 비해서는 신라는 참 아직도 오리무중이군요. 분명히 나의 현상과 가장 가까웁기 때문에 나를 울리는, 이동백이나 이화중선 등이 대표적인 모가지와 심금을 통해 울려오는 이 나라의 소리는 신라의 흔적이 담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닦아도 벌써 그 본바탕으로는 좀처럼 돌아갈 수 없는 녹이 잠뿍 낀 금속기나 아니면 이끼가 자욱이 앉은 암석과 같이만 느끼어지는 이 소리들은 신라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청산별곡」류와도 근사한 점으로 보아서 그 근원을 찾는다면 고려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하여간 이 소리—이놈은 항시 나보고 서리 내리는 야삼경에 홀로 일어나라 하고, 보퉁이나 하나 꾸려 들고 홀로 떠나라 하고, 이별하라 하고, 늘 울라 하고, 술을 마시라 하고, 한을 품으라 하고, 살아도 별일은 없다 하고—늘 속삭이는 놈입니다. 어찌 이놈이 내게만 그렇게 속삭일 뿐일까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역시 내 한스러운 과거 시작詩作의 밑바탕이 되던 이놈—잊어버리고 싶으면서도 무슨 매력 때문인지 거기에서 손쉽게 떠날 수가 없는 이놈이 내게뿐만 아니라 많은 이 나라 남녀들에게 아직도 작용하고 있는 걸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할 뿐입니다.
그러나 신라는 이런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그렇지만 이건 내가 신라란 무엇이라고 똑똑히 벌써 수개월 전부터 신라라는 것이 가능한 분위기를 내 속에 모아 보기 위하여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타 신라에 관한 이야기가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은 손이 닿는 대로 모조리 주워다가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신라는 아직도 개념이요, 아지랑이처럼 그 주위가 아물아물할 뿐 어떠한 정체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채로 있을 뿐입니다.
신라는 생각건대 저 서구의 상대上代인 그리스와 비슷한 것일까요? 그리스 신화의 기름진 윤기 흐르는 5월과 같은 것일까요?
아마 그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신화 한 권으로도 그리스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있지만, 신라는 아무것도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있다면 『삼국유사』등에 전해 오는 몇 조각의 이야기들입니다. 김춘수의 씨를 처녀의 배 속에 지니고 장작더미 불 위에 얹혀져서도 오히려 한결같았던 김유신 매씨의 이야기는 요새 신문에 전해지는 정화情話보다는 너무나 큽니다. 뒤를 이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법민이 “내가 죽으면 호국룡이 되어 이 나라를 또 한 번 지킨다”고 임종에 유언하였다는 이야기도 현대인의 임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총명한 지혜의 사람인 선덕여왕이 자기를 짝사랑하다가 미쳐 버린 지귀란 사내를 자기의 수레 뒤에 따르라 하고, 잠든 그의 가슴 위에 왕자王者로서 팔찌를 벗어 얹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물론 이조나 고려조의 일반 윤리로선 측정도 해 볼 수 없는 가화佳話이긴 합니다.
이런 것들이 그러나 주옥인 채 그대로 온갖 잡토 속에 묻혀서 우리들 속에 아무런 빛도 재생하지 못하고 있음은 웬일일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제2의 호머’에 해당할 만한 시인도 이 나라엔 일찍이 고려에도 이조에도 없어서 그것을 재현하지 못한 때문이라 봅니다. 물론 문헌의 인멸이 심한 이곳이고 보니 혹시 그런 것이 있다가도 모두 타 버렸는지는 모르지요만.
하여간 선인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보여 준 일이 없는 신라 정신의 집중적인 현대적 재현이 절실히 필요한 줄은 알겠습니다. 시로 소설로 희곡으로 이것들은 현대적으로 재형성되어서, 구미인들이 근대에 재활한 그리스 정신과 같이 우리가 늘 의거할 한 전통으로 화해야 할 것만은 알겠습니다. 요컨대 이지러지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신라에의 지향에 비해, 아직도 주위의 소리들은 너무나 절실히 내게 다시 이끼와 녹을 얹고 있을 뿐이로군요. 저 서럽고 한스러운 김남수나 이동백이나 이화중선 같은 사람들의 ‘석양판’을 “가자 가자 가자”고만 하는 것 같은 소리······ 신라가 반나마 개념인 대신 이 퇴락한 것들은 아직도 오히려 나를 더 많이 이끄는 매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쓰다 보니 벌써 지정 매수가 훨씬 넘었습니다. 두서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아 죄송합니다만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현명하신 선생께서는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지금 제에겐 어디 지구의 끝 간 곳에 초막을 얽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한번 떠나면 선생이 최근 미국을 다녀오시듯 그렇게 쉽게 아니 오고 거기서 ‘조국이 가진 사랑의 뜻’이 무엇인가를 오래오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은 우선 이만큼 줄입니다.
(『혜성』 19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