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

한국사상연구에 관한 서론적인 구상

 

교정자의 앞글

   은퇴를 앞둔 시커먼 아저씨들 중에는 옛날 한국신들의 형상形象이 숨겨진 장소를 안다고 말하는 중장년층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젊은 아들들에게 저 신들에 대해 기염을 토하고 그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한국인의 심장에는 귀중한 비밀 하나가 남게 된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은 희망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희망이었다. 구김살이라곤 없는 틱톡과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에 “민족중흥”이라는 절규적인 슬로건은 가망없이 낡고 초라해 보인다. 세대 간의 유대를 회복시키는 것은 인간들에게 삶의 비극적 인식을 심어주는 사무친 경험들뿐이어서, 죽음을 품지 못하는 이 땅에서는 민족도, 역사도, 사명도 전혀 있을 수 없다. 구구한 신변잡기나 자전적 소재로 도피한 오늘의 작가들은 기어코 탯줄과 염색체에 대해서밖에 쓰지 못해서, 죽은 자와 산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연결시키는 유대감의 구도를 제시하지 못한다. 젊은 정열의 허영심은 개인주의적으로 자신을 과장하는 경향에 의해서 손쉽게 선동되거나 페미니즘적 영웅으로 찬양됨으로써 투쟁에 이용된다. 엉거주춤한 시장주의자들과 조촐한 체제친화적 인사들이 보수주의자로서 행세하고, 그들은 결국 사정대로 살수밖에는 없다는 뻔뻔스런 비정을 홍보한다. 우리 시대는 희망에의 소명을 상실했다.

 

   이 빛바랜 “서론적인 구상”을 옮겨 적으면서, 근대와 민중Volk을 하나의 수맥으로 뚫어낸 박종홍의 펜을 나는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민중주의와 인민주의가 문화 일반을 위협하는 나의 시대에도, “민족중흥”의 착란적 성격이 점차로 명확해지는 나의 폭력적인 시대에도 새로운 정체성 정치를 향한 내 맘은 좀체 단념이 되지 않았다. 삶의 본질과 숙연하게 맞부딪쳐 있는 긴장감은 한국에서는 협조적, 봉사적 민족주의에 가장 많이 깃들어 있었고, 이는 국민들의 국가감각에 스미었는데, 이 지순한 한국적 휴머니즘에 대한 절망적인 사랑은 2016-7년을 통과하지 않았음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동학과 천도교를 고함소리로 운운할 수 있는 박종홍에 대한 질투를 만들었고 그를 물리치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충동을 만들어 냈다. 충동과 의지력은 마주 부딪쳤고 나는 홀로 외로웠다.

 

   열암은 한국의 스승praeceptor이고 급진적 보수주의자였으며 박정희의 양심이었다. 그는 다만 옛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의 복고를 희구하지도 않았고 근대화를 막무가내로 반대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한국 말로 말하며 생각하며 살고 있는 한국 사람” 곧 “우리”가 그의 논의의 중심이었고 한국혼이라는 전통을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 삼아서 변화를 관리하려고 애썼으며 근대라는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변형된 프레임워크 속에서의 한국 전통의 재전유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한국사상”으로서 한국은 “한갓된 정치적 민주주의” 곧 자유[민주]주의에 대립되는 보수주의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1960년대를 통과하면서 독재 및 권위주의에 의해 회수된 “자유민주주의”가 지배이념이자 권력의 핵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박종홍의 민족주의를 깊이 침식시킨 유토피아주의에도 그 원인이 있다. 열암의 민족주의는 영국에서처럼 공식 지배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연스럽게 결합되지 못했고 5.16 이후 저항이념로서의 자유주의를 약화시킨 나머지, 그 중층결정된 자유주의는 급진화한 좌파 민족주의 담론을 이루었고 인민주의의 민족종교적 기원을 형성하였다. 유신 이후 한국에서 민족 및 민중은 보수주의의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이는 약화된 국가감각으로 이어졌으며 국익에 대한 합의의 전적인 부재로 귀결되었다 (이 황량한 공간으로 “시민”이 들어온다). 정치적 현실주의의 성품을 지니지 못한, 곧 기골이 없는 보수주의는 허무한 보수세력,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적 천도교가 낳았던 독버섯, 대한제국의 문둥이인 열암은 인간의 막연하고 물러터진 선행에 조금도 얽매지 않는, 인간 본성이 얼마나 더럽고 악한지 직시시키는 신학 및 형이상학으로써만 보수주의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방도가 없었고, 그것은 그의 시대의 과제도 아니었다. 그의 시대가 실패한 만큼 그는 실패했다. (끝)

 

본문

1.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우리는 한국사상을 문제 삼기 전에 이미 한국 사람으로서 살고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서 사는 데서 한국사상도 생겨났으며 또 문제로 삼게도 된 것이다. 외국 사람은 한국사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할 수는 있으나 몸소 한국사상을 낳을 수는 없다. 외국 사람이 그대로 곧 한국 사람은 아니고 우리 대신 한국 사람의 삶까지 살아 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의를 가지고 이해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삶을 살 수 없는 이상 우리의 사상을 낳아 줄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국제적 세계적으로 추진되어 가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에 처하여 한국사상을 운운함은 마치 보수적인 고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이것은 국제적 세계적이라는 것의 진의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소치인 줄 안다. 각국의 특징을 말살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 국제적이 아니다. 서로 장점을 살리어 이해가 깊어질 때에 비로소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각자의 특색을 의의 있게 관철함으로써만 그 특색을 초월한 깊은 면에 있어서의 일치 융합도 가능한 것이다. 한 가정의 화목을 운하여 부부의 중성화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아연해질 것이다. 세계가 하나의 맥락 속으로 얽히어 있는 만큼 한국의 사정이 그대로 세계적인 정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요, 구태여 한국을 따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고 할는지 모르나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이 하나의 한국 사람으로서 행세해야만 되고 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람의 사상은 한국사상일 수밖에 없다.

 

   혹은 말하기를 세계적인 종교사상을 보라, 철학사상을 보라, 위대한 사상에는 국경이 없는 법이다 할는지 모른다. 옳다. 그러기에 서로 이해가 가능하고 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세계적인 종교, 세계적인 철학이 단 하나인 것은 아니다. 설사 근본 원리에 있어서 하나라고 보려는 사상이 있다 치더라도 그것은 또 그것대로 벌써 하나의 특색을 형성하며 있는 것이다. 하물며 동일한 종교, 가령 불교만 하더라도 전파된 나라를 따라 같은 동양에 있어서 그 얼마나 많은 종파가 생겨났던가. 한국적인 기독교라야만 한다는 주장도 일리 있는 일 같다. 철학은 왜 고대, 중세, 근대로만 나누어지지 않고 영미철학, 독일철학, 불란서철학 등의 특색을 말하게 되는 것일까. 그 모두가 하나같이 세계적인 진리를 지향하는 것이련만 사상이란 원래 인간의 생활 속 깊이 그 뿌리를 내리지 않고는 그의 옳은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인 만큼 자연 민족성 국민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한국사상도 하루 아침에 그 어느 개인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내진 것은 아니다.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이 한반도에서 생을 영위한 우리 선조들이 두고두고 피와 땀으로 싸워 얻은 고귀한 체험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대하여 그런 한국사상이라고 도대체 무엇이 있었느냐고 할는지 모른다. 좋다. 한 가지만 그분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외국 것을 알기 위하여 허비한 시간과 노력의 기분幾分을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하여 바쳐 본 일이 있느냐고. 알아본 일도, 아니 관심조차도 가져 본 일이 없으면서 단안부터 내리는 용기와 의아심은 자기의 일을 남의 일같이 대하는 너무나 딱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한국사상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거의 미개의 처녀지 그대로 있다. 미술이나 음악이 외국 사람으로서도 칭탄할 만한 그러한 수준의 것임이 사실이라면, 그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그와 더불어 생활한 한국 사람의 사상만이 유독 이렇다 할 것이 없었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잊어버리고 있는 것도 같다. 자아를 망각한 빈 마음은 이리 좇고 저리 달리어 새로운 사조를 유일의 진리인 양 받아들이기에 바쁜 것도 같으나 이를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 겨를을 가지지 못한 채로 거기에 남는 것은 공허한 모방에 지친 형해形骸뿐일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른바 사대주의의 말폐末弊요 자각을 가지지 못한 나라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안타까운 약점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의 도입이나 섭취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의 생활이 없는 곳에 우리의 사상만이 있을 수 없고 우리의 생활 자체가 하나의 완성품일 수 없다면 한국사상도 어떤 완결된 봉쇄적인 것일 수는 없다. 나의 생활이 나 홀로 고립하여 불가능하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사상은 외래사상과의 접촉 대결에 있어서 비로소 세련도 되고 성장도 한다. 한국사상이라 하여 태고적부터 완성 고정되어 있어서 마치 땅속에 파묻힌 보석과도 같이 어디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대로 찬연한 빛을 발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함도 경계할 일이다. 설사 그러한 보석과 같은 것이 있다 치더라도 그것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요, 또 갈아야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의 살 길을 찾는 데 있다면 한국의 사상은 우리가 살아 나아갈 앞길을 밝혀 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사상이란 회구懷舊적인 추억에 그의 사명이 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에 새 힘을 넣어 주는 안내의 몫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길을 개척할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길을 개척하여야 하며 걸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우리로서의 확호불발한 사상이 먼저 뚜렷하게 서야 할 것이 요구된다. 한국의 정치적 독립, 경제적 독립은 누구나 외치며 그를 위하여 싸울 줄 알면서 어찌하여 그의 정신적인 밑받침이 될 사상적 독립을 위하여는 그렇게도 대범한 것일까. 한국의 지도 이념이 떠난 정치 투쟁도 경제 계획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거니와 이 한국의 지도 이념이란 딴 것이 아니라 바로 한국사상이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정신을 이름이다.

 

2.

   한국 사람이 겪어온 고난 극복의 역사가 중첩한 파란과 곡절로 아로새겨질 적마다 한국의 사상은 폭이 넓어지고 깊이를 더하여 왔다. 따라서 섣부른 일면적 고찰로써 한국사상 전체의 본령을 파악하기는 매우 곤란한 일인 줄 안다. 보통 말하기를 한국 사람은 대체로 현세적 실제적인 것에 애착을 가지고 그를 즐기려 하며, 중시하려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이 본래 그랬음직한 일이요, 근세에 와서는 유교의 영향도 컸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가령 같은 불교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의 유물로서 오히려 미륵반가상의 절묘한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거나, 신라말엽에 있어서는 저 궁예가 특히 미륵불의 현신임을 자칭하였던 것 같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륵은 미래불이다. 현세적 실제적인 것을 단순하게 그것만으로 생각하려는 사상적 태도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사상 속에는 미래와의 관련에 있어서 현재를 파악하려는 태도도 있었던 것같이 짐작된다.

        

   현재의 진의는 한갓 현재에만 얽매임으로써 살려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나 과거의 파악에 있어서 미래에 대한 태도 여하가 다시없이 중요한 몫을 하는 것임을 우리는 주의하여야 한다. 과거의 역사와 당면의 사실은 사람의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간 날에 저지른 일을 후회하기도 하며 목전에 봉착한 난관 앞에 무력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과거나 현재의 의의가 언제나 일의적으로 이미 결정지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에 찬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써 현재가 긴장된 건설로 맥진驀進할 때 비로소 그의 과거는 새로운 뜻을 가지고 빛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시금 그의 과거가 살려져 현재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둘도 없는 힘이 되기도 한다. 건설적 의욕에 불타고 있는 청년의 맑은 눈동자에는 모든 것이 그 이상의 실현을 자극하며 추진시키는 귀중한 계기로 보여질 것이 아닌가.

 

   과거에서 무엇을 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는 미래에 대한 태도가 결정한다. 보통은 과거가 그대로 밀려 내려와 현재가 되고 또 미래가 된다고 하나 인간의 능동적 건설적인 행운은 그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의 역사에서 또는 고려시대의 역사에서 무엇을 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는 현재의 우리의 태도에 달렸고, 이 현재의 우리의 태도는 미래에 대한 건설적 의욕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이다.

 

   한국은 종래에 이상하게도 주로 소극적인 은사隱士의 나라, 더 나아가 애상哀傷의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고려자기의 형태나 또는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의 빛깔과 문양이 그렇다고도 하며 애조를 띤 민요의 멜로디가 또한 그렇다고도 한다. 대륙의 우렁참도 없고 섬나라의 현란함도 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하늘에 호소라도 하는 듯한 애달픈 조의 멜로디가 그의 특색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는 사람 자신이 너무나 애상적인 견지에서 미래에 대한 소극적 건설 의욕이 세차지 못할 때에 보여지는 일면인 줄 안다. 고구려 고분 내의 벽화들을 보라. 석굴암의 석가상을 보라. 거기 어디서 그런 소극적인 것, 더구나 애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청룡이나 현무의 그림에서 약동하는 선 속에는 오히려 웅혼한 기상과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석가상의 원만구족한 상호相好에는 누구나 믿음직한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탄압에 시달린 일제 치하에 있어서 유행되어 온 민요의 멜로디가 그대로 한국적인 정조를 대표한다고 하여도 좋은 것인지 나는 의문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민요란 대개가 애조를 띠는 것임직도 한 일이나, 신라나 고구려의 서울 거리에서, 그러한 애조를 띤 노래가 흘러 나오곤 하였을까 자못 의심되는 바다. 을지문덕의 시구에는 적을 삼키고도 남는 기개가 넘쳐 있거니와 대자연 속에 노닐은 화랑도들의 입에서 그처럼 나약한 애상의 노래가 흘러 나왔을 리 만무하다.

 

   한국은 반도이기 때문에 대륙과 섬나라의 양 틈에서 고난의 역사를 마치 운명적으로 받아 온 것처럼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틀림없는 판단이라면 장래도 그러한 운명을 걸머진 채로 같은 고난의 역사만을 되풀이하여야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반도니까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끌어 내진 말인가. 저 희랍의 반도를 생각해 보라. 이태리반도는 어떠하였던가. 고대희랍의 문화, 문예부흥기의 문화는 반도 아닌 어디서 생겨났던 것인가. 반도니까 그저 소극적인 운명을 걸머져야 된다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반도니까 오히려 종합적인 새로운 문화의 꽃이 필 수도 있고 반도니까 대륙도 섬나라도 포섭할 운명을 가질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건설적 기백과 계획에서 과거의 역사를 보는 눈을 기르자. 우리는 우리를 너무나 얕잡아 보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바로 우리의 것을 살려서 적극적으로 다룰 줄을 알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것은 공연한 허장성세가 아니다. 왜곡되었던 사실史實을 널리 바로 보자 함이요, 부질없는 편견을 제거하자는 것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한국사상이라야 불교사상 아니면 유교사상일 것이요, 불교나 유교가 모두 남의 것이 아니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와 유사한 외국인의 질문에 한국유학생들이 가끔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논법으로 일관한다면 서양의 여러 문명국에는 하나의 문화밖에 없고 아마도 이렇다 할 각자의 독자성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니 서양문화라는 것의 독자성마저 엄밀하게는 없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분명히 동양에서 시작된 종교이겠기 때문이다. 희랍사상까지도 동양사상의 영향 없이 생겨난 것이라고 단언하기 힘들 것인 줄 안다. 동양문화의 특색이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사람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먼저 반대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에 있어서만 불교나 유교가 외방外邦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하여 사상적인 독자성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한국의 불교는 선禪을 위주하였으나 선교를 겸한 조계종이 전체적인 주류를 형성하여 왔고 그와 관련하여 지눌과 같은 창의적이며 총혜聰慧한 고승을 낳았다. 우리는 이 지눌의 사상을 탐구천명함으로써 한국불교사상이 어떤 점에 있어서 그의 특색을 발휘하고 있는가가 밝혀질 것이 기대된다. 또 보통으로 말하기를 이조는 유학도들의 공리공론으로 망하였다고 하나 한 예로서 사단칠정론 같은 것은 오히려 세계철학사를 빛낼 우리의 자랑거리가 될지언정 무의미하다거나 더구나 해를 끼쳤다고 함은 지나친 혹평이 아닐 수 없다. 사단칠정론에 있어서와 같이 하나의 철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수세기 동안이나 뒤를 이어 끊임없이 줄기차게 논의되어 왔음은 아마도 다른 나라에서는 그 예를 보지 못할 일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한국 사람의 강인한 사색벽의 발로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의 철학적 두뇌와 역량을 여실하게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리공론 같이 보여지는 사단칠정론을 다시 계승하여 현대철학적 견지에서 좀더 철저히 연구 전개시킬 필요조차 있다고 나는 느끼곤 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널리 알려지는 날 세계 사람들은 한국에 그처럼 정치精緻한 철학적 이론이 있었음에 새삼스러이 놀랄 것이다. 그 총명한 머리를 가진 한국 사람으로서 독자적인 사상이 없었을 리 없고 더구나 차후로 확립하지 않고는 못 견딜 일이다.

 

   여기서 백 걸음 천 걸음을 양보하여 우리의 불교사상이나 유교사상에는 독자성이 없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한국에는 한국에서 생겨난 천도교라는 종교가 있지 않은가. 인내천의 종지宗旨는 현대의 그 어느 민주주의보다도 철저하고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갓된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다 철저한 윤리적 종교적인 민주주의를 제시하는 종교다. 현대 사상은 휴머니티를 자주 문제 삼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외친다. 그러나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에서보다 더 어디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조하는 사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면 전통적인 기독교인은 깜짝 놀랄 일이다. 그보다도 더 큰 죄악이 없겠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특색이 있다. 그러니까 서학 아닌 동학이었다. 논자는 말할는지도 모른다. 천도교는 유불선 삼교의 영향 밑에 이를 종합한 것뿐이라고. 좋다. 그러나 그 어느 사상 치고 유래를 따지면 다른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곤 절대로 없을 것이다. 가끔 독창적이라 하여 마치 하늘에서라도 떨어진 것같이 말하는 일도 없지 않으나 알고 보면 이미 어떤 사상과 반드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교나 유교 또는 기독교들 자체도 모두 그의 전신이라 할까 오히려 간단하다 할 수 없는 유서由緖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 그 영향 밑에 서면서 거기에 새로운 면을 개척한 것들이라 함이 온당할 것이다. 천도교도 여러 사상의 영향 밑에 서면서 인내천이라는 면을 강조하여 한국 사람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의 독자적인 사상이라 하여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논자는 또 아직도 사상적으로 충분히 이론화하는 데까지 전개되지 못하였음을 탓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바울 외에도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기타의 출현이 필요하였고 불교에는 아난의 총명은 물론 용수 기타의 이론이 필요하였고 유교에는 자사子思, 맹자, 내려와서 한유漢儒, 송유에 의한 전승 내지 철학화가 필요하지 않았던가. 천도교도 이후 수세기를 내려가는 동안에 그와 같은 역사를 가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덮어놓고 한국에 독자적인 사상이 없다 함은 스스로 하는 어리석은 소이밖에 안 될 것이다.

 

   한국에는 실학사상과 더불어 서양의 과학이 처음으로 수입되었었다. 과학은 오늘도 서양 것을 배우기에 바쁘다. 무엇보다도 시급히 배워야 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에게 과학적 창의성이 본래 없었던 것이 아님은 국민학교 학생들도 잘 안다. 거북선이나 활자의 발명을 모를 어린이가 없겠기 때문이다. 정책이나 기타의 이유로 해서 이러한 면이 계승 발전되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리 한국 사람이 과학적 소질이 본래부터 없었다 하여 좋을 리 없다. 소질이 없는 바 아니요 사상이 고정 완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미래의 건설을 꾀하는 견지에서 새싹을 찾아내어 다시금 북돋우어 줌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소질에 있어서 그 능력에 있어서 무엇이 외국 사람에 비하여 손색이 있단 말인가. 널리 배우는 동시에 우리를 알고 우리를 찾자. 한국의 앞날이 그대들과 더불어 희망에 차 있듯이 한국의 사상은 멀지 않아 뚜렷한 의의를 나타내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3.

   독자 중에 나의 이 모든 논조가 그대로 미덥지 못하게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말로 말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묻고 싶다. 이 글을 읽고 그에 대하여 의아한 생각이나마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글을 알며 그에 의하여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한국 사람은 한국 말로 말하며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영어도 좋다. 불어, 독어, 중국어도 좋다. 알면 알수록 좋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을 소통하여 친선을 도모하며 또는 무엇을 배우기 위한 것이요 한국 사람이 영미 사람이 되며 불란서, 독일, 중국 사람이 되어 버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 말로 말을 하며 생각하는 이상 우리는 한국 말이 가지는 특색을 무시하고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 사람의 사고 방식은 우리 말의 구조가 이미 이를 제약하고 있다. 우리의 말이 일조일석에 인공적으로 부자연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님과 같이 우리의 사고 방식은 아득한 옛날부터 장구한 우리 역사를 통하여 세련된 나머지에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한국사상은 한국적 사고 방식을 떠나지 않을 수 없고 그 독특한 사고 방식은 우리의 말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 말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적인 사고 방식은 거기에 엄연히 있는 것이요 따라서 한국사상은 없을 수 없다. 한국사상이라는 말에 대하여 무엇인지 석연치 못한 감을 그래도 가지는 사람에게 나는 한국 말이 외국 말과 같은가, 따라서 사고 방식이 같은가를 묻고 싶다. 사고 방식을 초월한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꿈 속의 잠꼬대도 우리의 말로 하지 않는가.

 

   위에서 나는 우리의 생활을 떠나서 우리의 사상을 생각할 수 없다 하였거니와 인간 생활의 기쁨과 슬픔, 한걸음 나아가 이론적인 추리에 이르기까지 말을 매개로 표현되어 전하여질 뿐만 아니라 말을 통하여 더 깊어도 지고 진전도 된다. <말은 존재의 집>이라든지 <말 없이 세계도 있을 수 없다>든지 하는 식의 현대철학적 표현도 일리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 말에 의하여 사고하며, 그 사고 방식의 특색이 다름 아닌 사상의 특색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상을 그의 토대인 생활과 매개 연결시키는 몫을 하는 것이 곧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사상을 연구하려면 한국 말부터 연구하는 것이 가장 옳은 방법일 것도 같다. 어휘의 정리와 비교, 문법상 구조의 차이 등이 밝혀질수록 우리의 사상적 특색도 밝혀질 것이다. 우리말의 특색을 알기 위하여서도 여러 외국어를 배워 비교 연구함은 둘도 없이 중요한 일이다. 나를 알기 위하여 남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외래어의 영향을 한국 말이 받지 않았다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어, 불어, 독어로 된 책을 아무리 독파하여도 그것만으로 우리의 한국사상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의의를 가졌고 또 불가결한 일이어서 널리 지식이나 자극의 섭취가 필요함은 인정하나 그것이 한국 말을 통하여 소화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영미사상, 불란서, 독일 사상은 될지언정 우리 자신의 사상은 될 수 없다. 남이 아무리 좋다는 사상이라도 그것이 한낱 수입품에 그치어 우리의 생활, 우리의 말로 소화 흡수되지 못한 채로 그저 껍질 외양만 흉내낼 때 어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어울리지 않는 몸짓을 하며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꼴이란 넌센스라기보다도 정녕코 가엾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무슨 활로가 발견될 것이랴. 자기 나라 말을 존중하여 아낄 줄 알고 그것을 잘 살리어 쓸 줄 아는 곳에 독특한 사상도 싹트며 빛을 발하게 됨을 우리는 외국의 사상사에서도 본다. 중세 이래 나전어羅甸語[각주:1]로써만 통하던 학술용어를 재빨리 모국어로 고쳐 쓰는 선견의 명明을 가졌던 나라가 근대사상을 리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영국이 그러하였고 독일, 불란서가 그러하였다. 이러한 용어에 관한 점에 있어서도 천도교는 그의 일부 경전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나는 우리 국어학에 대한 문외한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 한국사상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야를 차지함이 마땅할 것 같아 여기에 언급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 나의 서론적인 구상으로서의 이 시론은, 한국사상연구는 어떠한 태도로 그리고 어떠한 범위에 있어서 다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데 불과하다. 그 외에도 우리의 사상이 우리의 생활과 불가분리인 관계를 가진 것이 사실인 만큼 경제적인 조건 또는 법률 · 정치적인 제도 등등을 포함한 일반 문사 전반에 걸친 연구가 또한 보조를 같이하여 병행하여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점 저런 점 등을 고려할수록 한국사상의 연구는 단시일에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성과를 기대하기 곤란할 줄 안다. 분과별로 각기 전문을 따라 담당한 부문에 있어서 우선 자료의 수집과 정리로부터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는 일인 줄 안다. 그 단계를 밟고 나서 비로소 종합적인 결론이 점차로 가능할 것이요, 섣부른 독단적 억측을 서둘지 않음이 진실된 태도일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도 묵묵히 정진하는 선구자가 있어야 할 일이거니와 나는 그런 분들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설과 편의가 구비된 호시기의 도래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막연하기 끝이 없을 노릇이다. 다행으로 근자에 이르러 각 대학 또는 특설 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연구의 기초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현상이 보임은 진실로 동경同慶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상의 연구는 그와 아울러 뜻을 같이하는 청년 학구學究들의 발분과 협동적인 노고로써만 가치 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요, 그것이 동시에 우리의 새 세대의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의 몫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한국사상은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요, 오늘의 이 한국에 태어난 우리로서 세계사상사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이 외에 없을 것이다.

  1. 교정자: 라틴어.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