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디즈레일리
자, 이 새로운 종파는 권위의 원칙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저 원칙 위에, 이제껏 우리 나라뿐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모든 나라들의 모든 교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파는 아주 독특한 원칙 위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것은 비판의 원칙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심은 비판의 한 요소이고, 비판은 필연적으로 회의적인 경향을 지닙니다. 저는 [회의라는] 이 낱말을 철학적인 뜻에서 사용하는 것이지 일상적이거나 혐오스러운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비판의 원칙 위에 세워진 종파가 우리가 목불인견目不忍見하다고 여기는 결론들에 도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영감inspiration의 원리를 부정한다거나 기적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들에 도달하여서, 교리와 신조가 영감의 원리나 기적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도, 지탱될 수도 없다는 이유로 해서 교리를 부정하고 신조를 거부하게 되는 것도 충분히 논리적인 귀결일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오늘 함께해 주신 귀빈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에게 특별히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러한 결론들에 도달하여서, 각자의 소신을 좇아서 교리를 부정하고 신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론에 양심적으로 도달한 이후에도, 그들이 저 자신들의 원칙들을 합당한 귀결로 끌고 가지 않아서, 교리를 부정하고 신조를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국교회의 완고한 옹호자들로 남아 있으며 주임사제와 보조사제까지를 포함한 교회의 목회자들의 열렬한 지지자들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신자들과, 의견이나 신앙의 형태를 막론하고 우리 국민들 전체에게 들이닥친 것으로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 [문제의] 결과들은 그야말로 사활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신앙의 시대가 이미 지나가버렸다면, 우리가 우수한 교양과 탁월한 재능과 현란한 언변과 아마 어느 정도의 야심까지 있는, 그러나 별다른 독특한 견해는 없는 인재들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풍요한 상류층을 가지는 것은 전혀 무해한 사태일 수도 있고, 그다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경우는 기어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신앙의 시대가 흘러 지나가버렸다고 믿기보다는, 제가 저희들 둘레에서 일어나는 일들—우리 나라와, 우리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심지어는 전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볼 때에, 신앙의 시대가 흘러 지나가버렸다고 믿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극명한] 특징은 믿음을 향한 갈망에 있다고 생각하게만 됩니다. 주님…, 인간은 믿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까. 만일 그를 인도할 성스런 시대의 전통과 조상전래의 신념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진리의 등기부를 자긍自矜하는 교회가 없다면 인간은 저 자신의 심장 속에서, 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제단과 우상들을 찾아내야만 하겠지요. 2
- 원문. Benjamin Disraeli, “Church and the Queen”: Five Speeches Delivered by the Rt Hon B. Disraeli MP, 1860-1864. (London: G. J. Palmer, 1865). Contemporary Thought on Nineteenth Century Conservatism, eds. Richard A. Gaunt & Angus Hawkins, Routledge, vol IV에 재수록, 43-44. [본문으로]
- rectors, vicars, curates의 번역이다. 성공회의 경우 교단의 지침이 따로 없기 때문에 직제에 관해서도 여러 번역어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rector는 재정이 독립된 해당 지역교회가 청빙하여 사례를 지불하는 관할사제(주임사제)를 의미하고, vicar는 교구에 의해서 파송되는 관할사제(주임사제)를 의미하여, 한국어 번역으로는 이 두 직제 사이의 의미 차이를 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curate는 주로 부제를 의미하는데, “보좌사제”를 비롯해서 부교역자의 의미를 지닌 다양한 호칭들로 번역되는 것 같다. 당대의 한국에서, 성공회 사제들은 “목사”가 아닌 주로 “신부”로 호칭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