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우
민족과 문화
순수 고유한 조선 문화를 찾는다는 의미에서라면 조선의 박물관은 적어도 그 장소가 아닐 상 싶다. 이것은 필자의 솔직한 고백이지만, 평양박물관에서는 보다 더 한문화漢文化의 이식인 낙랑樂浪 문화를, 경주에서는 보다 더 불교 문화를, 그리고 개성과 경성, 이렇게 시대를 따라 내려온다면 딴은 그래도 어딘지 현재의 우리와 비슷하다는 일종의 유사감類似感을 가질 수 있어도 이 유사감 역시 아직도 우리가 고려말과 이조李朝의 유교 문화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으로 오는 유사감에 불과한 것이고 조선 고유의 것인 때문에 오는 친근감은 아니라는 것이 속일 수 없는 인상인 것이다. 단군 조선에까지 올라가면 모르나 적어도 사군四郡, 고구려, 신라, 고려, 그리고 이조까지 통틀어서 한문화, 특히 유교 문화나 그리고 불교 문화와 같은 외래 문화를 빼 놓는다면 순수 고유한 조선 문화로서의 문화적 유제遺制, 유물이 과연 어느 정도나 남게 될는지는 의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에 유산 정리에 있어 이 정리가 순수한 '내 것'만을 찾으려는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행해진다면, 그리고 정리자의 국수주의가 양심적이라면 조선의 문화유산은 몇 가지의 토속품에 그치고 말 정도의 무섭게 단출한 목록밖에 남지 않으리라는 것은 단언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 벌써 국수주의자는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낙제落第가 되는 것이다. 자랑하려는 것은 좋으나 자료의 빈곤에 부닥치고 말기 때문이다. 탈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 고유만을 고집하려는 그릇된 문화관의 고질痼疾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문화란 순수 고유의 것만이 '내 것'인 것은 아니다. 민족이 그러하듯이 문화 역시 순수 고유한 것만이 홀로 '내 것'인 것은 아니며 이러한 '내 것'만이 비로소 민족 문화인 것은 아니다. 원형은 어디서 왔든 생산자가 조선인이며 향유자가 조선인인 한, 그리고 흡수, 섭취,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가 떳떳한 한 개의 조선 문화며 이것이 점차로 민족의 살이 되며 피로 화化한다는 것이 문화사의 상식이 아니면 아니 된다.
문화 문제에 있어서의 국수주의의 이같은 당착, 순수 고유만 찾다가는 자랑거리가 되어야 할 건더기마저 잃어버리게 되리라는 당착은 문화라는 것을 초超역사적인 민족과의 결부에서만 보려는 그릇된 사관에 가장 큰 유래를 가지는 것이어서 의례히 문화라면 반드시 민족의 이름과 얽어매어, 가령 유교 문화라면 한족 문화, 불교 문화라면 인도 문화, 서양 문화라면 백인 문화, 이렇게 보려고 들고 이것을 가령 부족部族 조선의 문화라든지 봉건 조선의 문화라든지 하는 과학적인 범주 밑에서 관찰하려고 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파탄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부족 조선은 각기 각양으로 부족 국가로서의 형성과 지속을 위하여서, 그리고 봉건 조선은 봉건 조선을 위한 문화를 만들고자 자신에게 소유되는 우수·적절한 외래문화를 흡수·종합함으로써 자기의 체질에 알맞은 자기의 문화를 만들어낸 데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면, 여기에 고유니 외래니 하는 시비是非가 처음부터 문제될 턱이 없는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화를 '제 것'이라고 내세운다고 해서 불만을 제출할 건더기라고는 조금도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석굴암을, 또는 첨성대를 우리의 것으로서 얼마든지 세계를 향하여 자랑해서 무방하며 오직 논리적 모순에만 장기를 가진 국수주의자만이 이같은 자랑을 자랑할 자격이 없다면 없을 따름인 것이다.
민족이 문화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민족을 위해서 있다는 것은 한 개의 민족이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순시瞬時도 잊어서는 아니 될 간명중대한 진리다. 높고도 아무리 아름다운 문화라 해도 그것이 한 민족의 세계사적 발전에 도움이 못되고 도리어 이것을 조지阻止하는 질곡으로 화하게 되고 마는 한, 문화는 남아도 민족은 망한다. 비단 마야나 잉카나 크메르의 경우를 운위云謂할 것이 아니라 문화사상上으로 본다면 확실히 선진임에도 불고하고 근대 문화, 좀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 과학 문명의 섭취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보잘 것 없는 경지에 떨어지고만 아시아의 제諸 민족의 오늘이 무엇보다도 웅변적인 좋은 예다. 1
이같은 전락을 자위하는 수단으로 동양 문화는 정신 문화고 서양 문화는 물질 문명, 기계 문명이니 하면서 억지로 문화와 문명을 구별해 가면서까지 변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아기만이다. 여기 다시 박차를 가한 것이 일제의 음흉한 인종관일 것이다. 우리를 때려 부수고 우리를 약탈한 도구로 사용된 그들의 비행기나 기관총은 동양의 '정신문화'가 아니라, 기실은 서양 물질문명, 아니 정확히는 자본주의 과학 문명에서 배워온 것 중의 하나인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하거늘 그들은 의례히 문화 하면 동양 문화니, 아니 백인 문명이니, 황인 문화니 하며 문화가 마치 인종의 차이 때문으로 그처럼 차이·현격懸隔이 생긴 듯이나 떠든다는 것은 확실히 한 개의 음모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쳐 감으로써 한편으로는 그 소위 서양 문명이란 자를 슬금슬금 수입해다가는 저들로서는 절실히 필요한 압박과 침략의 도구, 가령 소총·기관총·전함·비행기 등속은 자꾸만 만들어가는 한편, 우리나 또는 그들 자신의 피압박 대중에게는 소리를 높여서 신도神道니 황도皇道니 팔굉일우八紘一宇니 하는, 근대 정신과는 얼토당토않은, 원시적·샤만적·국수당黨적인 미신이나 그런 것들을 지켜줄 것을 강요해 온 것이다. 또 알고 보면 봉건적인 굴복과 인종밖에는 더 안 되는 봉건 도덕적인 노예적인 것을 이것이야말로 서양인에게는 절대로 없는 동양 고유의 미풍이라고 해 가면서 동양 도덕, 동양 정신이라는 미명하에 극력 칭송, 권장, 강요함으로써 압제에 의한 예속의 영원화를 기도해 왔던 것이다. 이같은 음흉한 기만은 비단 우리네 조선인에게만 한했던 것은 아니고 중국 침략·태국 침략·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침략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수행되었다는 것은 지금은 한 개의 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들 일본인 자체에 대해서도 지배·특권·전제 제도의 확보를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어 비교적 교양이 낮고 마음씨가 단순한 무수한 피압박 근로 대중들은 지배자의 이같은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가서 누구를 위해서인 줄도 알 수 없는 침략 전쟁에 귀중한 땀과 피와 목숨까지도 알뜰히 제물로서 바쳐 온 것이다. 제국주의라 아무리 자국민·동포라 해도 압제와 착취에 들어서서는 별수가 없는 것이다. 신생 조선도 자칫 하다가는 이 일제가 밟던 전철을 되풀이할 위험이 결단코 없지 않은 것이다. 세계사의 면에서 보지를 않고 거저 덮어놓고 이것이야말로 동양적, 이것이야말로 조선적 운운만 하다가는 첫째 세계사적 수준에서 영영 뒤떨어져 버릴 위험성이 다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시대착오적인 완미頑迷한 국수주의적인 언동言動이 전제주의자나 친親파쇼분자들에게 이용되는 날이면 봉건적인 것을 일소하려는 민주 조선의 사회 해방은 영영 바랄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대저 전제주의자, 더구나 조건이 나쁘기로는 이미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경우에서 충분히 보듯이, 개명開明한 전제주의자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가령 무기를 비롯한 물질인 면에서는 되도록 근대를 확보하되 정신적인 면에서만은 어디까지든지 야만·미개·원시에다 인민을 얽매어 두려는 것이 인민 기만에 있어서의 그들의 상투적인 전략인 것이다. 이같은 전략이 결국에 가서는 실패하고야 만다는 것은 오늘 이들 파시스트들의 말로가 무엇보다도 그 증거거니와 무릇 문명과 미개, 현대와 원시가 무리 없이 동서同棲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2
원래 문화라는 것을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고 나누는 것부터가 과학적이 아닌 것이다. 서양 문명에도 고대가 있고 중세가 있는 것이며 또 중세나 고대에 올라가면 과학 문명이나 기계 문명과는 얼토당토않은 소위 정신 문화에 정확히 해당할 그러한 성질의 문화가 동양이나 마찬가지로 지배적이었던 것이며, 이른바 과학 문명, 기계 문명이란 자도 알고 보면 이 의미에서 단적으로 거저 서양 문명인 것이 아니라 근대 문명, 시민 문명, 좀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 문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편 또 가령 제 조건 특히 경제적 조건만 구비했다면, 슬프나마 이제 와서는 이것은 단순한 희망적인 조건에 그치고 마는 것이지만, 동양에도 아니, 조선에도, 그 소위 서양 문명이라는 것이 영미英美 등 서양보다도 한 걸음 앞서 수립되었을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말만이 서양문명이지 기실은 봉건 문화의 지양자止揚者로서의 자본주의 문화가 동양보다 서양에 한 걸음 앞서 꽃이 피었을 따름이며 오직 가령 영국은 영국답게 미국은 미국답게 이 자본주의 문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만한 조건이 구비되었고 또 이같은 조건 밑에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음에 반하여 조선은 진실로 '조선답게' 아직도 봉건적 유압遺壓에 허덕이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중대한 민족 문화의 재건기에 있어 덮어놓고 순수 고유만을 찾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속히 문화의 역사적 방면에 있어 한 걸음 앞선 선진 문화국의 수준에까지 따라갈 현실적인 제 조건의 준비에 전력을 다한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면 아니 된다. 이같은 제 조건의 진보와 긴밀한 보조를 맞추어 가면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당시의 조선인으로는 놀랄 만한 슬기로써 혹은 불교문화를, 혹은 또 유교문화를, 섭취·소화시켜 가면서 부족 조선, 봉건 조선의 건설·유지·발전에 이바지한 것처럼 지금은 일제의 잔독殘毒과 봉건의 유제遺制를 청소하고 용감하고도 재치 있게 신문화를 흡수·소화하여 민주주의 조선의 새로운 문화, 민주주의 민족 문화의 건설에 노력하지 아니 하면 아니 된다.
여기에 다시 부언하고 싶은 것은 첫째 위에서 민족이 문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가 민족을 위해서 있다고 말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문화라는 것이 그저 막연히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민족의 '누구'인가를 위해서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이조 봉건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유교 문화라고는 해도 유교 문화는 발생지인 중국에 있어서도 그러했지만 본질상 소위 서민의 문화일 수는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조선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로는 문화가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는 했으나 반드시 민족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문화가 민족을 위해서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민족이 문화를 위해서 있느냐, 문제를 이 모양으로 제기한다면 문화가 민족을 위해 있는 것이지 문화가 문화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더구나 민족이 문화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대답해야 옳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민족만을 위해서 문화가 있는 것이라든지 따라서 민족이란 것을 떠나서는 문화라는 것이 당초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라든지 이렇게 이해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요要는 단적으로 '민족'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렇게 때문에 '민족' 운운이야 어찌되었든 간 필요하기에 만들어 내고 만들어 내어서는 그것을 향유하는 개인 내지 개인의 집단만 있고 보면 민족 운운이야 어찌되든 문화는 생성·향유·발전하는 그러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 한 개의 훌륭한 예로서 우리는 가령 아메리카 문화라는 것을 들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아메리칸이라는 독자적인 민족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문화라는 한 개의 문화가 독자적인 성격을 구유具有한 채로 기운차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민족과 문화의 상관 문제에 있어서 금후今後를 암시하는 중대한 시사示唆의 의미가 있지 않는가도 생각되어 초민족적인 중세의 가톨릭 시대와 그리고는 소련의 경우와는 물론 다르다고는 해도 일련의 유사점이 눈에 띄어 우리로서는 특히 주목해 두어야 될 중요한 경향인 동시에 문화라면 반드시 민족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국수적인 문화관에 대한 중대한 반성의 재료가 될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이들과는 달라 단일 민족 국가이며 이 점만은 훨씬 더 다행하다. 하나 중요한 것은 막연히 그저 민족이 아니다. 민족의 '성원成員'이 어떻게 하면 되도록은 보다 많이 함께 잘 살 수 있느냐일 것인 한, 문화의 문제 역시 그러므로 어떠한 문화를 가지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 민족의 되도록은 전부를 위해서 행복 될 것이냐 아니냐에 관심의 전부가 놓이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소용될 문화는 이미 역사적 기여를 완료하고 물러선 봉건 문화나 그런 것일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내 것'이었기로서니 내 것이었다는 단순한 이 까닭만으로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잘 살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잃어버린 것이란 아쉬운 법이다. 더구나 사적史的인 유제, 유물은 한결 더 그러하다. 시간은 예사 물건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잃더라도 도로 찾을 수도 있을 그러한 물건이 아니며 여기에 다시 진실로 유물은 이같은 시간의 해골骸骨이라 아쉽기도 할 법하다. 그러나 아쉽든 말든 결국은 소용되는 것만이 소용되는 것이며, 소용되는 것만을 '내 것'으로 할 줄을 아는 민족만이 보다 더 오래 새롭고 씩씩한 민족일 수가 있다는 것은 민족의 묘지墓地, 세계사의 냉혹스런 교훈이다. '답보踏步로'라 해도 인제는 벌써 퇴보를 의미하는 중요한 지금이다. 보수와 주저는 금물이다. 일체의 보수와 주저를 물리치고 하루바삐 신문화를 대담히 받아들여 급속히 우리의 피와 살이 되게 하지 않으면 새 조선이 요구하는 민주주의 민족 문화의 건설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