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번역자의 앞글
1919년, 슈미트는 과거에 대한 뜨거운 향수와 작별하였다. 1922년 그는 법질서를 중지시키는 긴급조치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주권적 권력에 정치의 요체가 조직되어 있다는 『정치신학』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개별 행위자들을 절대적 무차별의 경지에서 바라보는 그 정치신학으로서 유대정신과의 투쟁을 연출했고 나치 정권 밑에서 곡학아세했다. 유대인들이 죽어서 나뭇잎처럼 쌓여가던 더러운 시기에 그는 다만 탈 없이 살았다. 슈미트의 화법에 대한 매혹과 혐오는 지금까지도 전후 자유민주주의적 정체성의 본질적 특질을 구성하고 있다.
슈미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악마굴 속에서 자기를 성취시켰다. 그가 입헌민주주의의 모순을 간파한 것인지 악용한 것인지는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고, 그가 진실과 양심을 바탕으로 글을 쓴 것인지 논단할 만큼 나는 현명하지 못하다. 그에게는 그에게만 예외적으로 열려 있는 정치신학이라는 안목이 있었고 그 경지는 높은 만큼 더 강한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렸다. 그는 늙어서 플레텐베르크에서 두문불출했고, 사람잡는 언론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결국 한갓 늙은 글쟁이, 역사의 흉물로서 그가 살았던 나치와 일체가 되어 버렸다. 『구원은 옥중에서』는 내면의 냉정 하나로 겨우 자신을 지켜온 자의 횡설수설이었다.
정당성Legitimität의 관점은 슈미트의 장기이고, 법Recht에는 합법성만이 아니라 정당성까지 머금어져 있음을 보이는 것은 그의 춘추필법이었다. 그는 홉스와 막스 베버를 탐닉했고, 신화 속에 모셔져 있던 홉스를 그가 우리의 삶 속으로 불러온 것은 정치사상사의 전무후무한 장관이었다. 『정치신학』에는 근대 국가가 걸신들린 대기업처럼 되었다는 베버의 발언이 그대로 복창되어 있다. 십년 후에 편찬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슈미트는 서구의 조락, 곧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마법에 걸려있던 앞 세대의 대표급으로서 베버를 지목했다. 슈미트가 주저앉아 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미 낡고 희망이 없었고, 시간은 새로워지지 않았다. 이 강렬한 크로노리비도 위에서 슈팽글러가 열독되고 칼리가리의 밀실에서는 미래와 몽유가 한 덩어리로 뒤엉켰다.
슈미트는 베버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베버가 서 있던 국법의 길이 끊어지는 절체절명의 심연에 곁따라 섰고, 제 사상을 관료적, 사법적 지배가 문제적으로 되는 통곡과 저주의 시대조류의 예외로 두지 않았다. 법과 정의와 같은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추상어들이 아니라 법률적인 낱말들을 붙들고 그 극진한 중립적 부호들에 나타나는 마음을 정직성이라고 고함쳐 가면서 입헌국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치화의 형식을 찾아서 그는 선배를 따라서 맨 몸뚱이를 던졌다. 1932년 출간된 『합법성과 정당성』은 그의 조국에 곰팡이처럼 피어났던 니힐리즘—합법성과 정당성의 분리—을 파기하려는 결사항전이었다. “이성의 카리스마”는 “카리스마의 합리성”과 구분되지 않았음으로, 슈미트는 백전백패할 것이었다.
베버는 합법성이 정당성의 일종인 것처럼 얼버무리곤 했다. (이는 이후 제자들에 의해서 합법성을 통한 정당성으로 변용되었다). 베버는 산업과 경제발전은 중앙화를 촉진하고 국가의 합법성이 국가 기능의 유일한 법적 토대가 되었으며 따라서 합법성이 정당성의 유일한 현상형식이 되었다고 적시했다고 슈미트는 견강부회했다.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에서 슈미트는 법 자체 속에서 법의 하자를 물고 늘어졌다. 법이 합법성과 정당성으로 찢어지고 법에서 정당성이 도려내지는 궤적을 치밀하게 추적했고, 법을 합법성이라는 작위로 환원시켜 죽사발을 만든 죄를 물어서 실증주의를 패대기쳤다. 그에 따르면, 합법성은 군주로부터 인민으로의 주권의 이행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방 놓는 것이었다. 헌법을 정당하게legitim 건지기 위해서는 그 일부는 합법적으로 침해되어도 별 수 없으며 비헌법적인 행위가 결국은 헌법적으로 충실한 행위가 된다는 슈미트의 논설은 합법성과 정당성이 함께 추는 독무獨舞였고, 이 정당성이 홀로 추는 파드두에 희망이 지겨운 많은 자들은 전율했다.
내 모국어에서, 레기티미탣은 자주 단도직입으로 “정당성”으로 번안되고, 그 번안 속에는 레기티미탣이란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연극이 있다. 이 나라 학문판은 너무 고급화되어서 미국을 닮아 간다. “정당성”에는 국민들을 죽여서 자빠트리는 정권은 정권으로서 정당하지 않다는 위대한 진취성의 근거가 있는데 (도덕, 정치철학적), 그런데 “정통성”에는 국민들의 살점을 튀기는 복잡하고 가혹한 것까지 사무치게 국가라는, 목을 조르는 듯한 인륜이 있다 (사회과학적). 슈미트가 의회주의, 자유주의의 지리멸렬을 넘어서는 조국의 정치질서를 상상하기 위해서 레갈리탣과 레기티미탣을 일도양단했던 것처럼, 한국어에서 정당성과 정통성正統性의 철두철미한 구분은 1948년의 건국헌법은 정당하게 제정된 것이지만 그 정통성은 1919년의 3.1 운동에서 기원한다는 한국사회의 가련한 믿음에 봉사해 왔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을 통해 3.1 운동을 미화하고 그 미화의 절실함으로써 만민공동회 및 임정과 대한민국 사이의 조화를 절망적으로 종용했다. 1919년과 1948년 사이의 이십구 년의 세월은 불투명한 맹목盲目에 잠겨 있고, “건국 70주년”과 “100년의 헌법”이라는 국가의 기년紀年을 둘러싼 과거정치 속에서 존속하거나 존속하지 않았다. 그러니, 레기티미탣이라는 낱말에 정당성과 정통성은 오로지 합성되어 있는 것이라는 의문은 감당할 수 없이 무섭다.
슈미트의 『헌법이론』이 연세대학의 김기범에 의해서 한국어로 초역된 것은 1976년이다. 제 조국이 비상사태인지 정상사태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던 196, 70년대의 황야를 정신없이 나뒹굴던 김기범은 “Legitimität”은 한사코 “정통성”을 의미한다고 오금을 박았다. 오늘 그토록 자명해 보이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결합은 겨우 역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민주적 평등성은 다른 정치적 결정을 통해서 반자유주의적이고 비의회주의적인 방식으로도 표현되고 수습될 수 있다고 그가 번역한 『헌법이론』에는 적혀 있었고, 이 언명은 유신과 유신에 반대하는 세력 모두에게 영적인 자극을 주었다.
섬광 같은 순간은 오지 않았다. 나는 “정당성”이라고 번역했으나 그것은 우연히 튀어나온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말 살림의 너절한 구차함과, 정통성의 객지까지 갔다가 정당성으로 돌아가는 무위의 마음을 이해받고 싶다 (끝).
본문
I. 헌법의 정당성의 종류들. 헌법은 사실적인 상태로서뿐 아니라, 적법한 질서로서 승인될 때, 그 결정에 헌법이 근거하는 헌법제정권력의 힘과 권위가 승인될 때 정당하다. 국가적 실존의 특성과 형식에 관해서 내려진 정치적 결정은 헌법의 실체를 구성하는데, [그 결정이] 유효한 것은 그 헌법이 문제되는 정치적 통일체가 엄존할 뿐 아니라 헌법제정권력의 주체가 그 실존의 특성과 형식을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윤리적 또는 법적 규범에 의한 정당화는 필요로 하지 않고, 정치적 실존에서 제 의의를 취한다. 규범이라는 것은 여기서 무엇 하나도 근거지울 수 없다. 이 특수한 류의 정치적 실존은 저 스스로를 정당화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두 헌법제정권력의 주체, 군주와 인민에 짝지어서 두 종류의 정당성, 즉 왕조적 정당성과 민주주의적 정당성이 역사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권위의 관점이 압도하는 곳에서는 군주의 헌법제정권력이 인정되게 될 것이고, 인민의 권리maiestas populi이라는 민주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헌법의 효력은 인민의 의지에 근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근거로부터만 그리고 왕조적 정당성과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구분하는 관점 하에서만 헌법의 정당성은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그것은 실제로는 정치적 통일체의 실존형식의 문제로 된다.
II. 헌법이 정당하다는 것은 헌법이 그 전에 유효하던 헌법률에 따라서 성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같은 이야기란 매우 황당무계하다. 헌법은 자신의 상위에 위치해 있는 규율에 따라서 성립되는 것은 정녕코 아니다. 게다가 새 헌법이, 새롭고 근본적인 정치적 결정이 기성의 헌법에 굴복하고 거기에 종속되게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기존의 헌법이 소멸되면서 새 헌법이 들어서는 곳에서 그 새 헌법은 구 헌법이 제거되었다는 이유로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되지 않는다. 이 말이 틀리다면 소멸되었다는 구헌법은 효력을 지속하는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구헌법과 새 헌법의 조화라는 문제는 정당성의 문제와는 어떠한 관련도 지니지 않는다. 바이마르 헌법의 정당성은 독일인민의 헌법제정권력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 헌법이 1871년의 기존 헌법을 제거하고 들어섰다는 사실은 왕조적 정당성의 관점으로부터 보면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고, 그게 전부일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민주주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는 군주정적 원리에 의거해서 왕이 발포한 흠정 헌법은 모조리 정당하지 않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전의 헌법률적 규율과 형식을 준수하여 성립되었는가, 즉 이를테면 바이마르 헌법의 규정들이, 구 라이히 헌법이 헌법개정을 규율하고 있는 제78조에서 규정한 절차적 규정에 따라서 들어선 것인가를 물음으로써 새 헌법을 측정한다는 것은 도대체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새 헌법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이전의 규범들에 의하여 구속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또 틀림없이 유효한 2 새 헌법이 이제는 효력을 상실하게 된 구헌법이 그 자신의 개정을 위하여 규정하고 있는 법규를 따랐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규범성”에 대한 우매한 필요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는 하나의 무의미한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W. 부르크하르트가 “헌법전과 제정법 Verfassungs- und Gesetzesrecht,” Politisches Jahrbuch der Schweizerischen Eidgenossenschaften, Bd. XXVI, 1910의 48쪽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다. “새 헌법의 적법성을 그 전 헌법의 규정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행헌법을 그 제정자가 그 전 헌법의 규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적이라고 한다면, 그때에는 먼저 그 전 헌법 자체가 적법한 것이었는가 등을 물을 수 있을 것이고, 시대를 소급해 올라가다가 불법적인 헌법을 하나라도 마주치면, 그 헌법이 제 존재근거를 현재로부터 도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과거의 승인 하에서 생명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허용될 수 없었다는 이유로 모든 다른 헌법들은 불법적인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헌법의 적법성에 관한 이러한 진술야말로 도대체 어떤 의의와 목적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허구에 찬 짓이다.” 그건 그렇고, 부르크하르트가 “헌법이 그것이 어떻게 개정될 수 있는가를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방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46쪽)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제시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대답을 했다면, 이러한 포괄적인 아니오는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의 헌법과 헌법률의 혼동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러 번 설명된 바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개정되어야 하는가는 헌법률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헌법은 그것이 그 이전부터 유효하고 헌법률적으로 규율되었던 헌법개정절차를 따라서 들어섰을 때에만 “정당하다”고 불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당성” 또는 “비정당성”같은 표현들이 사용될 때도 때때로 있다.
라이히 재판소는 유명한 판결, 민사판례집Zivilsachen Bd. 100, 25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변란에 의해서 발족한 신국가권력(노동자 및 군사위원회)에 대해서 국법적 승인이 거부될 수는 없다. 발족이 적법했는가가 국가권력의 본질적 표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발족의 비법성은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는 국가권력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구권력의 제거과 동시에 관철되는 신권력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이 명제들은 바이마르 헌법이 “적법한”것 인가, 즉, 제거된 헌법의 제78조의 절차를 따라서 성립했는가의 문제의 무의미함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물론, 이 [명제]들은 “헌법”이 아닌 다만 “국가권력”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합당하게 이해된 헌법개념에 있어서는 헌법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고 따라서 가령 안슈츠, 주석Kommentar, 5쪽에 있어서와 같이, 바이마르 헌법에도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을 주의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 또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 즉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는, 정치적인 것의 영역 내에서, 실존하는 것이다. 사법私法의 영역에 있어서 개개 살아있는 인간이 제 실존을 규범적으로 근거지울 필요도 없고 근거지울 수도 없는 것보다, 국가에게 합리화Rechtfertigung, 적법성, 정당성 등의 능력이 더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en, Bd. 58, 1927, 1ff. 쪽을 참조하라). 둘째, 국가와 국가권력은 동일한 것이다. 국가권력 없는 국가는 없고, 국가 없는 국가권력도 없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변한다거나 국가적 질서에 변동이 있는 것은 정치적 통일체의 계속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셋째, 기존헌법의 제거와 신헌법의 발포는 헌법제정권력의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후술 제10장을 참조하라). 넷째, 헌법의 정당성은 마찬가지로 헌법제정권력의 문제와 관련을 가지는 것이지, 이제는 통용되지 않게 된 헌법률의 규정과의 3조화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기성의 표현법은 헌법의 합헌성과 헌법개정의 허용성을 혼동하고 있다. 그러나 합헌적인 헌법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거나, 전적으로 공허한 상투어이다. 헌법이 저 스스로 자신이 합헌적이라고 결정을 내리고, 또 그 때문에 합헌적인 것으로 승인된다 할지라도, 헌법은 그로써 새로운 어떤 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유효한 모든 헌법은 자명하게도 합헌적인 것이다. 규범은 저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는 없고, 그 효력은 그 발포자의 실존적인 의지에 기반한다. 그러나 “합헌적인 헌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헌법률의 의미에 있어서 합헌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면, 그 모순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한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법률은 하등의 유효하고 법적으로 유의미한 특성을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III. 왕조적 정당성은 군주의 권위에 근거하고 있다. 제가끔의 개별자들이 그 개인적 현존으로부터 이러한 정치적 의의를 획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군주의 헌법제정권력도 마찬가지로 군주 개인에게 멎어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국가와 결부되어 있는 가족의 역사적 지속성에, 왕조와 왕위계승의 계속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왕조적 정당성으로 인도되게 된다.
이에 반해서, 민주주의적 정당성은 국가는 인민의 정치적 통일체라는 사상에 근거해 있다. 인민은 국가에 관한 모든 정의定義의 주역이다. 국가는 인민의 정치적 상태이다. 국가적 실존의 종류[양태]와 형식은 민주주의적 정통성의 원리를 따라서 인민의 자유 의지에 의하여 규정된다.
인민의 헌법제정의지는 어떠한 특정 절차에도 구애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적 헌법들의 현재의 관행은 그것이 헌법제정 총회에서의 선거이건, 또는 국민투표[레퍼렌덤]이건 간에 특정한 방식들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이 방식들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의 이념과 자주 결합되는 것인데, 이로써 정당성의 개념에 특정 절차가 개재되고, 따라서 개별적인 비밀투표의 절차로써 산정된 국민 과반수의 동의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러한 헌법들만이 진실로 민주주의적인 것이라고 명명되게 되는 것이다. 이 개별적인 비밀투표의 방법이 특히 참다운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문제적인 것인가는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 뒤에서 더 자세히 서술될 것이다. 인민의 암묵적인 동의도 언제나 가능하고, 또 [이는] 쉽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공공생활에 대한 단순한 참여만으로부터도 가령 인민의 헌법제정의지가 충분히 명료히 표현되게 되는 확정적 행위가 인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정치적 상태를 초래시키는 선거에 대한 참여에도 적용될 수 있다.
비얼링Bierling은 법적 원리론Juristische Prinzipienlehre, 1898, II, 363/4쪽에서 어떠한 “강제된 법규범도 여느 혁명적인 법제정과 꼭 같이 법적 동료[Rechtsgenossen, 시민]들의 추후적인 승인에 의해서 진정한 법적 효력을 획득할 수 있고”, 또 적법성을 산출하는 것은 항시 “제정된 규범들의 일반적인 승인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357쪽에서는 “이 제헌 라이히의회(1867년)의 선거의 실시는 (연방정부가) 의회와 합의한 헌법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전事前적인 승인을 내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으로써 비록 다만 암묵적으로 작동할 수는 있지만 항시 육박하는 인민의 헌법제정권력에 그 헌법의 기초를 둠으로써 갖가지의 헌법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적 정당성의 성격이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